마가복음 13:28-29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의 가지가 이미 연하여졌고 잎사귀가 나왔다면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아는 것처럼 앞에서 말한 징조들이 나타나면 주께서 재림하셔서 수확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때 천사들을 보내셔서 택하신 자들을 시공과 역사를 초월하여 다 모으신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화과 나무로부터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배우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28절은 무화과 나무로부터 비유를 배우라는 것이다. 새번역은 원어를 그대로 직역했지만 개역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무화과 나무로부터 배우라고 하신 말씀을 무화과 나무를 보고 비유를 배우라는 뜻이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뜻이 아니다. 무화과 나무를 볼 때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원어에는 ‘이미’ 라는 말이 있는데 한글성경들에는 빠져 있다. 이미 가지가 연해졌고 그 잎이 돋아났다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라는 뜻이다. ‘이미’ 라는 말과 ‘연해졌다’ 라는 말은 순서를 바꿔 앞에 놓아서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이는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된 뒤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계절 중에 특정한 시기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왜냐하면 팔레스틴 지방에서 무화과 나무는 겨울 동안 잎사귀가 다 떨어진다.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봄철이 끝나 갈 무렵에야 새순이 자라고 잎이 돋아난다. 이미 새순이 파랗게 돋아났고 잎사귀들이 나왔다면 머지않아 여름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늦은 봄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화과 나무를 보고 계절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징조들을 보고 주님 재림의 시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29절은 28절과 구조가 똑같고 중요한 말들도 똑같다. 먼저 28절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나온 것” 이라는 말은 29절의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무화과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들로 비유된 이러한 일들이란 인자가 오시는 것이 아니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것에 선 것과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고 가짜 선지자들과 가짜 그리스도들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이러한 일들이다.
또 28절의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안다” 라는 말은 29절에서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라는말로 바뀌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봐야 하는 것은 ‘여름’ 과 ‘인자’ 라는 말의 비교이다. 하나는 때를 말하고 있는데 그와 비교된 말은 인자이니 서로 맞지 않는 비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고대 유대인들에게 여름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고대 유대인들은 오직 두가지 계절만 생각했다. 비가 안 오는 여름과 비가 오는 겨울이다. 이중에서 여름은 수확기이다. 한국어에서 여름은 열매가 여는 시기라는 뜻이고 가을은 수확하여 갈무리 한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어에서 여름이라는 말은 수확기라는 뜻이다. 밀은 6월경에 수확하고 포도와 무화과와 올리브는 모두 7-8월에 수확한다. 따라서 지중해 연안에서는 여름철이 수확기이다. 그렇다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안다” 라는 말은 무화과를 수확하는 시기가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이와 비교되는 말을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인자” 라고 번역되어 있다. 다행히도 개역개정은 난하주에 "또는 때가" 라고 다른 번역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표시해 놓았다. 영어의 NIV도 “you know that it is near, right at the door” 라고 번역을 했다. 영어에서 “it is near” 라는 말은 때가 가까웠다 라는 뜻이다. 오늘날 성경해석자들도 일부는 문앞에라는 말 때문에 인자가 가까이 왔다라고 해석하지만 다수의 오늘날 성경 해석자들은 때가 가까이 왔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왜 이렇게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가 하면 원어는 단순히 3인칭 단수이기 때문이다. 3인칭 단수는 그 사람일 수도 있고 그것일 수도 있고 그 때 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가깝다는 말만 있다면 28절에서는 수확기가 가까웠다 했으니 29절에서도 그 때가 가까웠다 라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문앞에” 라는 말이다. 문 앞에라는 말 때문에 사람일 수 밖에 없다며 3인칭 단수를 “인자” 라고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문 앞에” 라는 말은 단지 가까이에 있다는 비유적 표현이기 때문에 "그 때가 가까이 왔다." "얼만큼?" "문 앞에까지!" 라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 29절 끝부분을 표현하자면 "그 때가 가까이 왔다. 코앞에까지!" 라는 뜻이다.
여름이 수확기라는 때를 나타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와 비교되는 29절의 말도 “그 사람” 이 아니라 “그 때” 이다. 만약 앞에서는 때를 말하고 뒤에서는 사람을 말했다면 예수님은 정말 엉터리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그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비유는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라는 말을 수확하는 시기가 가까이 온 줄 알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29절도 역시 수확하는 시기가 가까이 온 줄 알라는 뜻이다. 32-37절에서도 때를 말하고 있기에 문맥은 때가 가까웠다는 뜻이다.
따라서 29절도 인자가 아니라 NIV처럼 “그 때가 문 앞에 온 줄 알아라” 라고 번역해야 28절의 비유와 29절의 해설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무화과 나무를 보고 수확할 시기가 멀지 않은 것을 아는 것처럼 앞에 나온 징조들을 보고 선택된 사람들을 수확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통해 가르치시려는 것은 인자가 와서 선택된 사람들을 수확할 시기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언제가 오늘날 무화과 나무의 가지가 연해질 때인가? 교회 지도자들이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교만해져서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받는 때이다. 그런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때가 가지가 연해지는 때인 것이다. 사탄은 먼저 교회 지도자들을 속이려 한다. 그러면 나머지들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에게 쉽게 넘어오기 때문이다.
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이러한 교만의 올가미를 피해 도망가는 선택된 사람들을 속이려 할 때가 바로 잎사귀가 나오는 때이다. 무화과 나무는 가지가 먼저 연해지고 잎사귀가 다음에 나오지만 이런 일들이 대부분 밤사이에 다 이루어지기에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이런 일들이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 오셔서 수확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