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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12:38-40

Dawn Word

마가복음 12:38-40

거짓된 거룩을 나타내는 예복을 벗으라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8. 24.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2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2:38-40 예수께서는 일상 생활에서도 예복을 입고 다니며 거룩한척하면서 실제로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율법학자들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가르치시자 무리들은 깨닫고 기뻐하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을 공격하던 율법학자들을 조심하고 절대 그들을 본받지 말라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은 35-37절에서 예수님께 도전하던 율법학자들을 향해 질문으로 시작하시고 구약을 인용하신 뒤 논리로 가르치신 것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드러내신 뒤에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38절은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말씀하셨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어에서 바로 이어지는 명령은 “조심하라”는 말이다. 조심하라는 말은 주의깊게 잘 살펴 경계하라는 이다. 잘 살피고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저절로 그들을 본받게 되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할 대상은 율법학자들이다. 하지만 율법학자 자체를 조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이 좋아하던 것들이 38-39절에 계속 이어진다.

첫번째로 율법학자들이 좋아하던 것은 긴 예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이들이 입던 예복은 특별히 회당이나 성전에서 가르치는 자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입던 예복이다. 율법학자들은 발끝까지 내려오던 긴 흰색 베옷을 입었다. 이는 율법에 완전히 헌신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옷은 원래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칠 때만 입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어딜 가나 입고 다녔다. 이 옷만 입고 나서면 이들을 어딜가나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이들이 존경받은 이유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온 삶을 다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점점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까지도 가로챘다. 이들은 대단한 존경을 받다 보니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보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PhD 학위 가운을 입는 것에 비교할 수 있겠다. PhD 학위를 가진 교수들은 졸업식장에 참석할 때 PhD 학위 가운을 입고 참석한다. 졸업식에서 주는 각종 학위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입는 것이다. PhD 가운은 전공에 따라 다르고 학교에 따라서도 가운의 색과 후드의 색이 다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PhD 가운을 입고 백화점이나 식당이나 교회에 온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모두가 웃겠지만 그 사람이 PhD 학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것이다. 만약 하버드대의 빨간색 PhD 가운을 입고 백화점에 온다면 하버드대의 PhD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것이다. 웃기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한 학식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오늘날은 웃음거리이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가리침이 모든 유대인들의 일상의 삶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들의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예복을 입고 나타나면 누구나 금방 알아보고 존경을 표시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회당이나 성전에서 가르칠 때만 입는 예복을 일상 생활에서도 입고 다닌 것이다.

나머지 세가지는 모두 흰 예복을 입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했다. 이것도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예복을 입고 장터에 가면 일반 백성들은 율법학자들을 알아보고는 존경을 표시했다. 그래서 저들은 장에 갈 때도 예복을 입었다.

세번째로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오늘날 초청받은 설교자들이 강단에 앉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다. 모든 회중들이 다 보이는 곳에 흰 예복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 것이다. 그러면 모든 회중들이 다 바라보고 존경을 표시했다. 그래서 저들은 회당에서도 예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

네번째로는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했다. 전에 예수님의 비유를 설교할 때 보여드렸던 Triclinium에서 귀빈들이 앉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저들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길 원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40절에서는 이러한 율법학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은 이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면서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가산이라는 말은 원래 집이라는 뜻인데 과부의 재산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과부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아무런 보호막도 없고 먹고 살길도 없던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이 이처럼 가장 불쌍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이사야 10:1-4절을 보면 저들이 어떻게 과부의 재산을 삼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10:1-2절은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라고 말하고 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고 불의한 말을 기록한 것이 바로 율법학자들이다. 이들이 기록한 것에 따라 강제로 헌금이나 제물을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자에게 화가 있다고 했다. 저들은 성경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석하여 지켜야할 세부적인 율법규정들을 만들어 기록하고 그러한 규정들을 따라 가난한 자들을 착취했던 것이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대가를 요구할 수 없었다. 단지 신앙심이 깊고 여유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베풀어주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헌신된 자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후원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관습이 확산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게 되었고 가난한 과부들까지도 율법학자들을 후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후원은 가난한 과부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의 관습 때문에 어쩔수 없이 했던 것이다. 만약 율법학자들이 자신들이 가르치는 하나님 말씀을 삶으로 실천했다면 이러한 불쌍한 과부들에게 후원금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저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과부의 재산을 삼킨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남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기도를 길게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거짓된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속으로는 탐욕스럽게 재물을 탐했다는 것이다. 저들의 문제점은 단순히 권위있는 옷을 입고 권위있게 행동했다는데 있지 않다. 저들은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고 이중적인 행동을 한 것이 문제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신분을 나타내는 예복을 입고 다니지 않으니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하면 안된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다 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율법학자들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하지 않으면 제자들도 나중엔 율법학자들처럼 될 것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하신 것이다.

율법학자들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받는 자들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거룩함을 나타내는 긴 예복을 벗어야 한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 하면서 자신들의 추악한 모습은 감춘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복을 입은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가르치거나 교제하거나 봉사를 할 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한다면 그것이 바로 예복을 입은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적인 비밀이나 속마음을 다 드러내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복을 벗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폭력행사이다. 긴 예복을 벗으라는 것은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모습을 감추고 거짓으로 거룩한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 거룩한 척하기 시작하면 끝없는 위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거짓으로 거룩한 척 믿음 좋은 척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 오래 다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자리에 설수록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율법학자의 긴 옷을 벗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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