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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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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12:28-31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뗄 수 없는 하나이다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8. 18.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2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2:28-31 한 율법학자가 어떤 계명이 가장 크냐고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보시고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수혼제도를 가지고 부활을 반박하던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출애굽기 3:6절을 인용하시며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들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두개파들이 망신을 당한 것을 보고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 어떤 계명이 가장 크냐며 예수께 도전을 하는 장면이다.

28절은 “그리고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라는 말과 다가왔다는 말은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과 변론하는 것을 다 듣다가 예수께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그 율법학자는 예수님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변론하는 것을 다 들었다. 예수님께서 대답 잘하시는 것도 직접 목격했다. 원어에 보면 잘했다는 말을 앞으로 옮겨 강조해 놓았다.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대답하시는 모습을 직접 듣고 보며 정말 대답 잘한다라고 감탄하고 있는 장면이다.

앞에 나온 산헤드린 공회나 바리새파와 헤롯당이나 사두개파들은 모두 떼거리로 몰려왔다. 예수님께 오자마자 다짜고짜 적대적이거나 올무가 될 말을 던졌다. 하지만 이 사람은 혼자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듣고 직접 본 후에 진지하게 질문을 했다. 이 사람은 매우 지적이고 교양이 있으며 상당히 신중한 사람이다. 앞에서는 하수들이 떼거리로 나서서 싸웠는데 모두 패하자 이번에는 최고의 고수가 홀로 나선 것이다. 예의 바르게 물었지만 최고의 고수이기에 그 칼날을 숨기고 있는 것 뿐이다. 34절에 “그 뒤에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자가 없었다” 라는 말은 이 율법학자가 최고로 저명한 학자였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 사람이 물은 것은 모든 계명 가운데서 어떤 계명이 가장 으뜸이냐는 것이다. 이는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하냐는 뜻이다. 이 율법학자는 가장 중요한 계명 하나만 말해보라고 질문한 것이다. 이는 몰라서 배우기 위해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이 율법학자는 마치 박사과정 논문 심사를 받는 학생 하나를 앞에 놓고 질문하는 권위있는 교수와 같은 태도이다. 최고로 존경받는 저명한 율법학자가 나서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면 탈락시키겠다는 것과 같은 거만한 태도이다. 모든 청중들은 이 사람이 나선 것을 보고 이번에는 예수님이 망신을 당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29절에서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신명기 6:4-5절을 가지고 대답하셨다. 하나만 말해보라 했는데 예수님은 두개를 말씀하셨다. 보통 29절 앞에 “그래서” 라는 연결하는 말이 들어가야 하는데 29절에는 없다. 이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첫째는 이것이다” 라고 즉시 답변을 시작하셨다는 뜻이다.

그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아침저녁으로 늘 암송하던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의 핵심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믿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라는 유명한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을 제일 먼저 강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 중 어떤 계명이 제일 중요하냐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질문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된다.

이어서 30절에서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네 가지 수단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다. 그 네 가지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이다. 원어의 뜻은 “네 모든 마음을 사용해서 네 모든 목숨을 사용해서 네 모든 뜻을 사용해서 네 모든 힘을 사용해서” 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하라는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놀라운 은혜 때문이다. 그 은혜에 감사를 사랑으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신명기에 보면 마음과 목숨과 힘만 나오는데 예수님은 “뜻” 이라는 말을 추가하셨다. 이 네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우리도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진정한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마음이란 생각과 지식이 머무는 자리이고 속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모든 마음을 다 사용해서 라는 말은 자신의 속사람의 자리에 온전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 드릴까 하는 생각과 지식만 두라는 것이다. 신명기 8:14절에 보면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당신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라고 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반대가 속사람이 교만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마음 안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두지 않게 된다. 그 대신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 속사람의 생각과 지식이 있을 자리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모든 마음을 다 사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생각만 우리 안에 가득 채우지 않고 다른 것을 사랑하는 생각을 함께 채워 놓으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두번째로 목숨이란 말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를 말한다. 신명기에서는 느낌들과 감정들과 욕망들을 가진 존재라는 경우에 주로 쓰였다. 신명기 12:20절에 보면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라는 말에서 네 마음이란 말이 바로 목숨이라는 말이다. 느낌과 감정과 욕망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살아있는 우리가 가진 모든 감정과 욕망을 다 사용해서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 안에 다른 것을 사랑할 욕망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도 우상숭배이다.

세번째 뜻이라는 말은 이해력과 지적능력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첫번째에서 나온 마음이란 말과 가까운 말이다. 히브리서에서는 마음과 뜻이란 말이 두번이나 함께 쓰였다. 첫번째에 나온 마음이란 말이 속사람의 생각이라면 세번째에 나온 뜻이란 말은 속사람이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모든 지적인 능력을 다 사용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께서 추가하신 이 말은 이해력과 지적능력이 최고 수준인 율법학자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모든 지적 능력을 모두 다 사용해서 어떻게 하나님만 사랑할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네번째 힘이라는 말은 사람의 역량이나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두번째의 목숨이란 말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두번째에 나온 욕망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가 네번째에 나온 일을 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그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하나님만 사랑하려는 욕망을 자신이 가진 역량을 다 사용해서 실현하라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하려는 욕망을 품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에 온 힘을 다 써야 하는 것이다.

첫번째의 마음이라고 표현한 속사람의 생각과 네번째 나온 그 속사람의 지적 능력을 서로 짝지을 수 있다. 속사람의 생각은 지적 능력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두번째에 나온 느낌과 욕망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와 네번째에 나온 그 존재 자체가 가진 모든 능력이 서로 짝지어질 수 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욕망은 자신이 가진 힘을 통해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이 네가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사용해서 하나님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원어에 보면 31절 시작부분에는 연결하는 말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연결하는 말도 없이 직접 이어진다. 이는 첫번째에서 말한 한 분이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당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 강조했다.

당시 사두개파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르쳤다. 바리새파들은 율법을 통해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려내어 거룩한 삶을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전심전력을 다했던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의 율법학자도 역시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지 계속 가르쳐 왔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 물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틀렸다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틀린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서 멈춘 것이다.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면 안된다는 것이다. 연결하는 말도 없이 바로 이어지는 다음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뗄 수 없는 하나이기에 연결하는 말 없이 이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레위기 19:18절에서 온 말이다. 율법학자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대답하라 했는데 예수께서는 두개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두개가 아니다. 예수님은 연결하는 말 없이 이 두가지를 단단히 하나로 묶어서 가르치신 것이다. 절대로 이 두가지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31절 끝부분에 있는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라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하나로 묶어서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는 것이지 이웃 사랑의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대답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두개파 사람들의 주장처럼 성전 중심의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바리새파 사람들의 주장처럼 정결법을 통해 거룩한 것을 구별된 삶을 드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저들이 하나님 사랑에서 멈추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통해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계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님이 새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미 십계명에 나와 있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십계명 돌판의 한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들이고 다른 한쪽은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이제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나 정결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척하면서 이웃은 정죄해서 내팽개치던 유대교 지도자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욕하신 것이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외식하는 자들이고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 사랑도 거짓이라는 것이다. 물론 저들은 자신들의 하나님 사랑은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웃들을 내팽개친 것이기에 거짓이라고 하신 것이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레위기 19:18절의 이웃을 유대인 동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자신들처럼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동포들만 이웃이라 했고 율법을 어기는 자들은 죄인이라 해서 이방인 취급하고 공동체 밖으로 내쫓았다. 이방인들도 부정하지만 율법을 어긴 죄인들도 부정한 자들이기에 모두 골라내서 버렸던 것이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저들은 그렇게 더러운 사람들을 골라내서 버림으로 공동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유대인 동포 중에 경건한 자가 이웃이라는 생각을 깨뜨리셨다. 경건한 제사장과 레위인은 다 그냥 도망갔지만 상종못할 더러운 원수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자비를 베풀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자가 이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인 원수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다면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바로 이웃이라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은 하나님 사랑이 첫째 계명이고 이웃 사랑은 둘째 계명으로 분리해서 생각했기에 하나님 사랑에만 집중을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만약 우리가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와 헌금과 봉사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우리도 겉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했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한 덩어리이고 절대로 분리할 수 없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대답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할 이웃이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교회들은 주로 사회 봉사와 구제사업에 집중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사랑하신 대상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다. 만약 온 세상이 다 이웃이라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돕다가 지쳐 형식적으로 하는 척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우리와 늘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때로는 우리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원수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불편하고 원수 같은 우리의 이웃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이웃 사랑은 의지적인 것이지 감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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