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20-26 예수께서는 말라죽은 무화과 나무를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전 폐기를 위한 기도를 한다 해도 믿고 기도하면 응답이 된다고 하시면서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오셔서 성전 바깥마당에서 제물을 팔고 돈을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책망하신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대교 지도자를 상징하는 무화과 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두고 예수께서 믿음대로 구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시는 내용이다.
20절은 다음날 아침 예수님 일행이 그 무화과 나무 옆을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 나무라 뿌리채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절에서 제자들 중 베드로는 하루 전 예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며 가르치신 것을 기억하고 무화과 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다른 제자들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하루만에 살아있는 나무가 완전히 마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놀라운 기적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놀라게 하려고 나무를 저주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가르치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22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만 대답하시지 않고 모두에게 대답하셨다. 그 대답은 정말 엉뚱하게도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원어를 직역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처럼 저주받아 말라죽지 않으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는 성전 안에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그들처럼 저주를 받아 완전히 멸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23절에서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지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는 말은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치실 때 공식처럼 하신 말씀이다. 그 영적 진리는 세단계로 되어 있다.
첫째는 이 산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 산이란 아무 산이나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산은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 눈 앞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성전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어를 보면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말과 this에 해당하는 말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가리키시거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지라고 말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이다.
하나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 산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거룩히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룩한 성전이 있는 산을 바다에 빠지라고 말하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이다. 번쩍 들린다는 말은 원어에서 나무를 뿌리채 뽑는 것을 말한다. 바다에 빠지라는 말은 산을 바다로 옮긴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쓸모없은 성전산을 말라죽은 무화과 나무를 뽑듯 뽑아서 바다에 버리라는 뜻이다. 바다는 군대귀신 들린 돼지 떼를 폐기처분한 곳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성전 산을 돼지 떼와 같은 곳에 폐기처분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성전은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당시 유대인들은 이런 말은 입에 담기도 두려워했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루살렘 성전과 그 안에 있는 지도자들을 용도폐기 하셨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일을 두고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구하라는 뜻이다.
두번째 단계는 마음에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로마서 10:10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라고 한 말과 연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로마서 10:10절과는 그 순서가 바뀌었지만 의미는 같다. 입으로 말만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의심없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말을 해야 한다.
세번째 단계는 “말한대로 될 것을 믿으면” 이다. 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구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은 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의심하지 않고 말로 한 것이 앞으로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에 드러난 하나님의 일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들은 흔히 고난 중에서 기도하면서 바라는 것을 이미 이루어진 일로 표현한다. 그와 같은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 구절을 가지고 산을 옮기는 믿음이라고 말하며 도깨비 방망이처럼 사용했다. 아무것이나 기도하고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 했다. 만약 안 이루어지면 그 때는 “네가 의심해서 그래!” "말한대로 될 것을 믿지 않아서 그래!" 라고 말하며 믿음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산이 뽑히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말라죽은 무화과 나무와 같은 성전을 뽑아서 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만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 성전은 우리 주님을 머리로 둔 주님의 몸된 교회이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게 말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기에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단계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24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라는 말이다. 예루살렘 성전 산을 용도폐기 선언하는 믿음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이든지" 라는 말은 앞에서 예루살렘 성전 산을 용도폐기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들을 말한다. 원어에서는 "무엇이든지"에 해당하는 말이 본래 말의 순서와 달리 앞으로 나와 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성전산을 용도폐기하는 놀라운 일보다 더 놀라운 모든 일을 강조한 것이다.
받은 줄로 믿으면 그것이 너희에게 그대로 된다는 말은 원에서서는 “그것은 네것이다”라는 말이다. 뭐든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기도하고 간구하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이미 기도한 자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기도한 자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렇게 간구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25절은 그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밝혀준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나타낸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와서 서서 기도했다. 서서 기도할 때 먼저 해야 할 일이 나와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과 서로 원수가 된 일이 있으면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 산을 용도폐기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도를 하고 기도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 놀라운 기도를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먼저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원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도 용서해 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됩니다. 우리도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기 때문에 폐기처분 대상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성전산을 폐기처분 선언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고 그것이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에서 찾으신 믿음이다.
26절은 4세기의 중요한 대문자 사본들에는 없다. 후대의 사본들에만 "그러나 만약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King James Version에도 26절이 원본에 있는 것처럼 표기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필사자들이 보고 베껴쓰다가 같은 다른 줄에 있는 같은 단어를 보고 26절은 건너 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본들의 증거로 볼 때 이는 후대의 필사자들이 마태복음 6:15절을 보고 적어넣은 것이 분명하다.
오늘 말씀에서 산을 옮기는 믿음이란 타락한 유대교 지도자들로 인해 강도의 소굴로 변한 예루살렘 성전산을 용도폐기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몸된 교회가 회복되게 해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이 말씀을 자기 마음에 있는 그 어떤 욕심이라도 구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사용하면 안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과 같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도 당시 유대교 성전처럼 타락해서 쓸모없게 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타락한 교회들이 용도폐기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로 회복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믿음의 공동체는 원수까지도 용서하시고 사랑하라 하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교회들이다. 우리가 먼저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오래 참아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도록 하자. 그러면 그러한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