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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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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11:7-11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오해하고 환영하던 사람들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8. 5.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1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1:7-11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하고 왕의 대관식 때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환영행사를 했지만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평화의 왕이시고 만왕의 왕시셨다.

이전 말씀에서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나귀 새끼가 있었고 나귀 새끼를 풀자 사람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했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허락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이다.

7절에 보면 제자들이 새끼 나귀를 데려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 놓았다. 이는 새끼 나귀 등에 안장 대신 옷을 깐 것은 왕의 대관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고 순례자들도 먼길을 말이나 나귀를 타고 왔더라도 성문에 들어설 때는 내려서 걷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경우는 왕의 대관식 때 뿐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왕으로 대관식을 올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열왕기상 1:38절과 44절에도 나온다. “솔로몬을 다윗왕의 노새에 태워서” 데리고 간 것이다. 이는 솔로몬이 다윗왕의 왕권을 물려받았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자신들의 옷을 깔아놓은 새끼 나귀의 등에 예수께서 타신 것은 이제 다윗왕의 왕권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예수께서 출발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옷을 길에 깔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고 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까지는 2마일 이상인데 만약 그 거리를 계속 이렇게 했다면 정말 대단히 존귀한 분으로 대우한 것이다. 나뭇가지라고 번역된 말은 길쭉한 나뭇가지일 수도 있고 갈대나 곡식줄기 같은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침대 매트리스 대용으로 쓰던 부드러운 것이다. 볏단보다 훨씬 긴 줄기들을 길에 펴서 마치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옷을 까는 것은 열왕기하 9:13절에서 예후가 왕이라고 선포할 때도 한 것이다. 대관식을 마친 왕이 행진을 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9절에서는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 따르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는 두 그룹의 사람들이아니라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고 있는 모습이다. 예수님을 둘러싸고있는 사람들은 “호산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이라고 외쳤다. 이는 시편 118:25-26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호산나 라는 말은 “우리가 간구합니다. 우리를구원하소서” 라는 말이다. 70역 구약성서에서는 “우리를 구하소서” 라고 번역을 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히브리어 그대로 소리나는 대로 기록한 것이다. 또 이어서 10절서도 “복되도다 우리 아버지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주도한 대관식과 왕의 행진은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왕을 위한 것 이다. 이들은 정치적인 지도자를 기대한 것이고 아마도 과격한 사회 변혁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복된 분은 바로 다윗왕과 같은 왕이고우리들의 아버지 다윗의 나라는 다윗시대의 이스라엘과 같이 강력한 나라이다. 로마를 몰아내고 주변나라를 정복해서 다윗 시대와 같이 잘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관식과 왕의 행진을 이끈 사람들이 누굴까? 본문을 보면 열 두 제자들은 분명히 그들 중에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열 두 제자들이 주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8절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누구일까? 많은 성경 해석자들이 그냥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의 길을 함께 가던 순례객들이라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왕으로 외쳤다가 며칠 후에는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과연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일까? 우연히 만나서 이분이 메시야구나 라고 발견하고 그렇게 열광하고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연히 마주친 이들은 48절에도 나온다. 48절에서 바디매오가 소리치지 못하도록 막은 사람들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다. 저들은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처럼 예수님을 둘러싸고 바디매오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합류한 순례객들일 수 없다. 32절에도 “뒤따라 가는 사람들” 이란 말이 나온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수님으로부터 놀라운 가르침과 기적을 통해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면서 무리들은 점차 늘어났을 것이다. 바디매오가 치유받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더 크게 늘어났을 것이다. 이들은 열 두 제자는 아니지만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따라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와 열 두 제자가 함께 이러한 대관식과 왕의 행진을 도운 것이다.

저들 모두는 예수님을 잘못 알았다. 저들이 스가랴 9:9절을 자세히 읽고 묵상했다면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셨다는 말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던 율법학자들의 문제이다. 저들이 이 구절을 무시하고 다윗과 같은 위대한 정복자로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과 욕심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오랫동안 가르쳐 왔기 때문에 모두가 다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나귀는 군인들이 타고 다니던 말이 아니다. 이는 주로 농부들이 물건을 나르고 일하러 갈 때 쓰던 동물이다. 따라서 말은 전쟁의 상징이고 권위적인 왕을 나타내지만 나귀는 평화의 상징이고 그 나귀를 탄 왕은 겸손히 섬기는 왕인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정치적인 왕을 기다렸기 때문에 이러한 구절은흘려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귀를 데려오라 해서 타고 가심으로 자신은다윗과 같은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라 평화의 왕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들이 생각하는대로 왕의 행진이라 생각하고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 왕으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그러나 이스라엘만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세상 모든 만민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분은 진정 만왕의 왕으로 오셨다. 제자들과 무리들은 예수님을 잘못 알았다. 11절에 더 놀라운 내용이 나옵니다. 11절에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으로 가셨다. 모든 것을 둘러 보셨는데 이미 날이 저물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과 함께 다시 베다니로 가셨다.

이게 왜 놀라운 내용인? 예수님은 창세기와 스가랴에 예언된 메시야 라는 것을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알렸다. 왕의 행진을 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구약성경의 전문가였다. 특히 메시야에 관한 예언에 대해서는 완전히 꿰고 있던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걸어 들어오시지 않고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만 보아도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는 진짜 왕이다. 그런 왕이 오셔서 성전을 방문했는데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왕이 오셨다면 아무리 늦은 시각이라 해도 기다렸어야 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나귀타고입성하시는 것을 보고도 미친 사람 취급하고 완전히 무시했다.

제자들과 무리들이 예수님을 정치지도자로 생각하고 왕의 대관식을 행하고 왕의 행진하는 것이나 이것을 보고 완전히 무시하며 정신나간 사람 취급하는 것이나 완전히 똑 같은 것이다. 제자들과 무리들이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나 똑같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기적을 행하신 소문을 듣고도 메시야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야는 자신들과 같이 거룩한 자들에게 와야 하는데 자신들이 버린 죄인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진짜 메시야가 아니라고 했다.

저들도 예수님을 잘못 알았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생각한것처럼 이스라엘의 낮은 자들만 구하러 오신 혁명가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더욱 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러 오신 귀족들의왕도 아니셨다. 예수님은 그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신 만왕의 왕으로 오셨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진정한 만왕의 왕이시다. 그 분의 대관식과 왕의 행진은 진짜 평화의 왕으로 오신 만왕의 왕의 행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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