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39-41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는 자는 우리 편이고 함께 상을 받을 자이니 막지 말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요한은 자신들만 예수께서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못하게 했다고 예수님께 보고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런 사람도 함께 품삯을 받을 자이니 막지 말라 하시는 내용이다.
이러한 요한의 보고에 대해 예수님은 39절에서 막지 말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을 못하게 막는다는 것은 정말 모순된 행동이다. 자신들도 못하면서 자신들만의 특권인척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겸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교만이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막지 말라고 한 것이다.
오늘 말씀과 비슷한 내용이 구약에도 나온다. 민수기 11:24-25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장로 칠십명을 장막에 둘러 세웠을 때 모세에게 내린 하나님의 영이 장로들에게도 내렸다. 그런데 26-30에 보면 엘닷과 메닷이라는 두 사람이 회막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신이 임하고 예언했다고 한 소년이 모세에게 보고했다. 이를 듣고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금하게 하라고 했지만 모세는 금하지 말라 했다.
이에 대해 모세가 29절에서 대답하기를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했다. 여호수아도 요한처럼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특권의식의 안에는 시기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과 함께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내렸다고 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백성이 다 자신처럼 선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응답하신 것을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금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교만이다.
막지 말라하신 말씀 다음에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세번이 나온다. 막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세가지인 것이다. 그중 첫번째 이유는 39절 뒷부분에 나온다. 첫번째 이유는 내 이름 위에 서서 능력을 행하고 금방 나를 욕할 사람은 없다고 하셨다. 따라서 첫번째 적이 아닌 사람을 대적하여 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두번째 왜냐하면은 40절 앞에 나온다. 그것은 우리를 대적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는 않지만 사탄의 왕국과 싸우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반대하지만 않으면 모두 예수님 편 이라는 말인가? 오늘날 다른 종교를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반대하지만 않으면 예수님 편이라는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반대하지 않는 자가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말은 오해하면 안된다. 그냥 중립에 서서 구경하는 자가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 당시나 사도들이 활동하던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적대적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님을 지지한다는 것은 유대교 신앙 공동체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반대하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용기였다. 더 큰 용기가 없어 예수님을 지지하고 순교자가 되지 못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아리마대 요셉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사역을 지지했었다. 그런 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위하는 자라는 뜻이다.
세번째 왜냐하면이 이끄는 말은 네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이름 안에서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이다. 제자들에게 물 한 컵이라도 주는 사람들은 직접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다니며 사역하지는 않더라도 모두가 다 예수님 편이라는 것이다. 원문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이 그 다음에 나온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그가 결코 그의 보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더라도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받을 품삯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36절에 나온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어린아이를 영접한다는 것은 종의 모습으로 어린아이 같은 자를 맞이들이며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섬김이 겨우 물한잔 주는 것에 그친다 해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어린아이 같이 낮은 자를 섬기라 했는데도 못 알아듣고 완장차고 폼잡는 학창시절 규율부원처럼 행동하는 제자들을 보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제자라고 높은 자리에서서 폼잡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낮은 자를 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이지 폼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진짜 우리의 적인지 분명히 식별해야 한다. 그런데 그 판단하는 기준이 우리의 욕심이나 시기심이 되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혼동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내 생각과 내 이익을 내려놓고 판단하기 시작해야 한다. 나와 우리 그룹과 우리 교회에 유익이 되는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누가 그리스도의 편인지 정확히 식별한다면 그도 우리와 함께 상받을 자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중세의 카톨릭의 지도자들도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주장하며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한 사람들을 죽이기 까지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지키려고 그렇게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요한과 똑같이 자신들이 그 권한을 독점하려고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과거 카톨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요한과 똑같이 완장을 차고 특권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을 받았다고 자신들만이 특권을 가진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속한 교단이나 교회만 정통 보수라며 자랑하고 그 밖의 다른 교회나 다른 교단 사람들은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국 38절에 나온 요한과 똑 같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들의 권위와 영광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행한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도 우리와 함께 그 행한 품삯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