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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9:36-37

Dawn Word

마가복음 9:36-37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가 되라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7. 12.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9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9:36-37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팔로 감싸 안으시고는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누가 서로 높은지 논쟁을 했던 제자들을 부르셔서 호통을 치며 부르셔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 밑에 아무도 없는 가장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가장 낮은 존재인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후에 36절에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신 다음 껴안아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 어린아이는 앞에서 말로 가르친 가장 낮은 자 섬기는 종이 어떤 사람인지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순수하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가장 낮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 아이는 그 집에 있던 종의 자녀였을 것이다. 종의 어린 자녀는 그 집안에서 가장 낮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어린아이를 예수님께서는 두 팔로 감싸 안고 계셨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말씀하신 내용은 37절에 나온다. 그 말씀은 두개의 등식이다. 먼저 첫번째 등식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은 원문에서는 예수의 이름 위에서 라는 뜻이다. 믿는 자들은 예수의 이름 위에 서 있는 자들인 것이다. 믿는 자들은 세상 가운데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믿는 자들을 구경하는데 그 발 밑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진짜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가장 낮은 자를 영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낮은 자를 영접한다는 것은 자신은 가장 낮은 자의 종이 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서 있는 자들이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모습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인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게 된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예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다. 영접한다는 말은 한번이라도 영접한다면 이란 뜻이다. 그러면 그것은 예수님을 현재 계속 영접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등식은 현재 예수님을 계속 영접하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낮고 천한 성도 하나를 종의 자세로 영접하여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여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는 것이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했다. 그런데 18: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는 모습이 나온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축복을 받은 것이다. 또 갈라디아서 4:14절에 보면 병들어 보기 흉한 바울을 갈라디아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고 영접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라고 했다. 하나님을 미리 알아본다면 누구나 다 최선을 다해 영접할 것이다.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바울을 영접했는지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갈라디아 성도들도 사람들이 모두 멸시하고 외면할 바울을 눈이라도 빼 줄 심정으로 영접해서 하나님을 영접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보기에는 볼품없고 멸시할만한 비천한 성도를 온 정성 다해 종의 자세로 영접해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무리 가운데서는 계급이나 서열은 없어야 한다. 모두가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종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종의 자세로 섬기면 섬김을 받는 자도 미안한 마음으로 받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같은 자세로 섬기게 된다. 몇사람만 가장 낮은 종이 되면 안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13절에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가장 낮은 자 앞에 엎드려 낮은 자의 발을 씻기는 종들만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출석교인이 다 그럴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아직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들도 하나님을 만나고 서로 섬기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속된 장난감들이 장난치지 못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인 교회는 세상 질서가 거꾸로 뒤집힌 곳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계속 도와주고 돌봐주어야만 한다. 어린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없다면 어린 아이들은 정말 귀찮은 존재들이다. 사랑이 없다면 제발 없었으면 하는 존재들이 어린아이들이다. 정말 손이 많이 가고 귀찮기 때문이다. 교회 안의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이는 정말 귀찮은 존재들일 수 있다. 그래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말고 계속 섬겨야 한다. 그 이유는 그래야 그들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장해서 또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가 땅끝까지 퍼지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생기는 모든 다툼은 섬겨 놓고 섬긴 것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생긴다. 그러나 알아줄 것을 기대하고 섬기는 것은 종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종은 섬기고 나서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들을 섬긴 것을 알아주지 못하고 아무런 보상도 해줄줄 모른다. 장성한 후에 자신들도 그렇게 섬겨본 후에야 깨닫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말없이 섬겨서 그들이 성장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참아주며 영접하고 섬기는 자들은 장차 주님 다시 오실 때 열 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열린 길을 지나 수정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우리 주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 벌떡 일어나셔서 우리를 영접하시고 우리를 높여 주실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섬긴 보상이다. 그 때를 생각하며 짜증나고 귀찮은 사람들을 낮은 자세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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