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33-35 예수께서는 누가 서로 높은지 논쟁을 했던 제자들을 부르셔서 호통을 치며 부르셔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 밑에 아무도 없는 가장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이 확정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고 묻는 것 조차도 두려워하였다. 자신들이 배웠고 기대했던 메시야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끼리 누가 더 높은지 논쟁하는 장면이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본부였다. 가버나움의 집 안에 계실 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는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다투었다는 말은 싸웠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유들을 함께 놓고 따져보았다는 뜻이다. 마가복음 11:31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의논하여 말하였다” 라는 말에서 의논하여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요한의 침례가 하늘에서 왔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람에게서 왔다고 해야 할까? 두가지를 놓고 자기들끼리 논쟁하는 장면이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뭘 가지고 다투었냐는 말도 무얼 가지고 서로 논쟁을 해 보았는지 물어보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잠했다. 그 이유는 누가 크냐고 서로 논쟁을 했기 때문이다. 크다는 말은 지위가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제자들이 다 서로 자기가 높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 사이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첫번째와 두번째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야고보와 요한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경쟁자로 등장한 제자는 베드로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셨기 때문이다. 또 9:29절에서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대답한 것을 보아도 베드로가 떠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서열 경쟁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셋이다.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높으냐 아니면 베드로가 높으냐 서로 토론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토론을 했는데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다.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신 다음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했다. 자리에 앉으시는 것은 제자들을 가르칠 준비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다. “불러놓고” 라는 말은 마가복음 14:72절에서 수탉이 울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 말이 사람들에게 쓰일 때는 큰소리로 부르거나 소리지르는 것을 나타낸다. 제자들이 모두 집안에 있는데 왜 큰 소리로 소리치며 부르시는 것일까? 이 말은 예수께서 집안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는 뜻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권위있는 목소리로 힘있게 불렀다는 뜻이다.
33절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은 곁에 있던 몇몇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이다. 예수께서 물으셨는데도 대답들을 못하자 집안 전체에 들리도록 "야! 모두 다 이리 모여봐!" 라고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두번이나 예고했는데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특별한 사람이 되려는 야망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제자들을 엄히 책망하며 가르치기 위해서 스스로의 권위를 가지고 모두 가까이 모이라고 힘있게 부르신 것이다.
부르셔서 말씀하신 것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란 말은 유대인 사회에서 통치자나 귀족이나 백성을 다스리는 제사장을 가리키던 말이다. 꼴찌란 신분이 가장 낮은 노예를 뜻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종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들도 자기 아래에 부리는 종들이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섬기는 가장 낮은 종은 자기 밑에는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모두가 가장 존경받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예수님을 따라왔다. 그런데 오직 섬길 대상만 있을 뿐 자기 아래에는 아무도 없는 가장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야 55:8절에 보면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했다. 제자들의 생각은 능력이 많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나중에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열두 제자들 안에서도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될지 논쟁을 했던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실 모두가 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했다. 이것이 이사야에 나온 "너희 생각" 즉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기 밑에는 아무도 없는 가장 낮은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의 분쟁이나 교단 내의 모든 분쟁도 다른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 속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서로 자신이 높다는 것이다. 모든 분쟁들은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예외없이 자존심 싸움이다. 낮은 자리에서 섬긴다고 하면서도 섬기고 났을 때 높여주지 않으면 속상해 하고 화를 낸다. 그러나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인정을 받으려고 섬긴 것은 섬긴 것이 아니다. 가장 낮은 종은 많은 수고를 해 놓고도 욕을 먹고 무시를 당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높아질 사람이기에 교회 안에서 내가 먼저 섬기고 나서 무시당하면서도 계속 섬기는 자리에 서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길이다. 섭섭한 마음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참고 섬기도록 하자. 그 길이 예수께서 앞서 가시며 따라오라고 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