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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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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9:31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7. 8.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9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9:31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다니시며 자신의 죽음이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 확정이 되었고 사흘 후에 부활하신다고 가르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은밀하게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시기 위해 사람들을 피해 갈릴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렇게 사람들을 피해 다니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이 확정된 것을 가르치시는 내용이다.

31절은 “왜냐하면” 이란 말로 시작한다. 왜 예수께서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으셔서 사람들을 피해 갈릴리 옆으로 지나가셨는가 하면 이란 뜻이다. 그 이유는 바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이다. 가르치시며 라는 말은 오랫동안 계속해서 가르치셨다는 뜻이다. 그 가르치신 내용의 중심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마가복음 8:31절과 조금 다르다. 그 차이를 비교해 보면 오늘 말씀에 나온 십자가에 대한 예고가 단순히 반복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첫번째 차이는 “되어야만 한다” 와 “이미 확정되었다” 이다. 8:31절은 “되어져야만 한다” 는 것으로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9:31절은 분명히 실행될 미래를 나타내는 말들로 되어있다. 따라서 8:31절은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필요성만 말씀하셨다.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9:31절에서는 이미 확정되었고 앞으로 분명히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확정한 것을 예수님은 다 아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일을 다 아시는 예수님의 전지하심과 미리 아시는 예수님의 예지 즉 미리아심을 볼 수 있다. 전지와 예지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두번째 차이점은 8:31절에서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라고 되어 있는데 9:31절은 “사람들의 손에” 라고 바뀌었다. 이는 이미 한번 말했기 때문에 간단히 줄여 말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세 종류의 유대교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이젠 배신자가 끼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과 제자들 중의 배신자까지 포함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이다. 제자들 중 하나가 배신한다는 것도 미리 다 아신 것이다.

세번째 차이점은 “많은 고난을 받고 배척을 받아” 라는 말이 “넘기워”로 바뀌었다. 넘어간다는 말은 배신당하다”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NLT는 “to be betrayed” 로 번역했다. 넘겨진다는 말에는 유다에게 배신 당한다는 뜻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9:31절에 나온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예고는 이미 확정되었고 분명히 실행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중 특히 다음 세개의 동사들을 주목해야 한다. 세 개의 동사들은 "그가 넘겨지고”와 “그들이 죽이고”와 “그가 살아날 것” 이다. 특이한 것은 “넘겨지고” 라는 말만 현재형이고 나머지 두개는 미래형이다. 미래의 일을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고 있다" 라고 현재형으로 말한 것은 이미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 확정된 일이고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죽인다는 말과 부활한다는 말은 넘겨진 뒤에 앞으로 분명히 이루어질 일이다. 따라서 이제 십자가의 고난은 이미 확정되었고 분명히 시행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신 것이다.

원어를 보면 워드플레이를 통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 원어에서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 넘어간다는 말 다음에 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마가는 인자라는 말을 순서를 바꿔 맨 앞에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이란 말을 맨 뒤에 배치했다.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란 말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를 뜻하는 말이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분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들을 참아주시면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이땅에 보내신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참아주신 대상인 사람들은 자신들은 무자비하게 예수님을 고문하고 죽인다는 것이다. 이 워드 플레이를 통해 강조되는 것은 자비하신 하나님과 무자비한 인간들이다. 자비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무자비한 인간들에게 넘어가고 죽임 당하신다는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말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이러한 무자비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인내로 참아주시고 계신 것이다. 로마서 1: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라고 했다. 또 26절과 28절에서도 내버려두었다 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들을 내버려 두신 것은 그냥 방치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회개하길 기다리며 인내하셨다는 것이다. 사무엘하 24:14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라고 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비의 마음으로 참아주시는데 인간들은 정말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무자비한 인간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도 무자비한 인간들 편에 서서 무자비한 인간들이 자기들 욕심대로 해석한 메시야를 기대하며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지속적으로 가르치셨다. 그것은 이제 탐욕스러운 세상 사람들처럼 높아지려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자비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자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치셨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높아지려는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포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길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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