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9:25-27

Dawn Word

마가복음 9:25-27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아이를 살려주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7. 5.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9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9:25-27 예수께서는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아이를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본보기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보라는 식으로 말하던 아이의 아버지에게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생각으로 제한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장면이다.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시고 예수님만 전적으로 믿는 믿음을 요구하신 뒤에 이제 예수께서 능력을 행하시는 장면이이 이어진다. 그런데 25절은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말로 시작한다. 25절은 “무리가 어울려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무리들이 달려오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 실패하고 율법학자들과 논쟁하는 모습은 이미 큰 구경거리이다. 이미 그곳 사람들이 다 모여든 상태에서 또 다른 무리들이 달려온다는 것은 가능성이 적다.

15절에서도 무리들이 예수께 달려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15절에서는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5절에서는 무리들이 멀리서 달려오는 장면이다. 그러나 25절에서 달려온다는 말은 새번역은 어울려 달려온다고 했고 개역은 달려 모인다고 했다. 이는 한 정확한 지점으로 함께 달린다는 뜻이다. 이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있던 무리들이 예수님과 아이의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곳으로 한꺼번에 달려와 예수님과 아버지와 아이를 둘러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아이 아버지와 아들을 따로 데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셔서 말씀 하신 것일 것이다. 7:33절에 보면 데가볼리 지역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료하실 때에도 따로 데리고 가셔서 치료하셨다. 8:23절에 보면 벳세다에서 눈먼 소경을 치료하실 때에도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치료하셨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서도 역시 따로 데리고 가셨다 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장소의 형편상 완전히 떨어진 장소로 가기 어렵기 때문에 무리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셨을 것이다. 아이 아버지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믿음의 고백을 듣기 위해서 이다. 아이 아버지가 큰소리로 “내가 믿습니다” 라고 크게 고함을 치듯 소리치자 사람들이 알아듣고 기적을 보려고 달려온 것일 것이다. 왜냐햐면 믿음의 고백을 들은 뒤에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구경하려고 달려오는 무리들이 몰려오기 전에 신속하게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다. 새번역은 악한 귀신이라 번역했지만 원문은 개역처럼 더러운 귀신이라는 뜻이다. 먼저 예수님은 귀신의 이름을 부르셨다. 귀신의 이름은 말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이다. 두번째는 귀신에게 명령하셔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하셨다. 귀신을 내쫓긴 했는데 다시 들어간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귀신축사는 완전한 것이었다.

26절에서 귀신은 나가면서 소리를 지르고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24절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질렀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에 24절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얼마나 큰 소리를 질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소리를 지르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귀신이 나갔다는 것은 성공적으로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경하러 달려온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 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상황은 더 나빠진 셈이다. 이는 마치 “수술은 성공했지만 환자는 죽었다” 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죽은 것 같다는 말은 아이를 괴롭히던 귀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어쩌면 진짜로 아이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귀신이 나가면서 아이를 죽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기록은 그 기적의 현장에서 있던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증언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아이가 그 순간 죽었었는지 살아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목격자들은 단지 눈으로 볼 때 죽은 것 같이 보였다 라고 증언할 뿐이다.

27절에 보면 단서가 나온다. 27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는 것을 나타낸다. 27절 앞부분의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라는 말은 마가복음 5:41절의 소녀를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5:41절에서는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지만 여기서는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일으키셨다” 는 말은 마가복음에서 주로 부활시에 쓰인 말이다. 예수께서 일으키시니 그 아이는 일어섰다. “일어섰다”는 말도 역시 예수님의 부활에 쓰인 말이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은 실수이고 예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신 것은 또 다른 소생의 기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마가가 야이로의 딸을 살리니 것과 같은 말을 사용하여 부활의 능력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9:10절에서 제자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신 것이다

실제로 아이가 죽었었는지 아닌지는 우리는 분명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마가가 사용한 단어들을 보면 마가는 분명히 야이로의 딸을 일으킨 것과 이 아이를 일으킨 것을 연결하며 이 아이는 새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아이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믿음을 고백할 때 새생명을 얻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10절에서 제자들이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해 대답한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과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을 암시한 것이다.

오늘 말씀은 아이의 아버지가 확신에 찬 감격으로 크게 소리치며 불신앙에서 믿음으로 돌아섰을 때 죽은 것 같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우리의 생각을 따라 우리의 뜻대로 믿던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완전히 돌아서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고 전적으로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로만 믿는다고 말하는 거짓된 믿음에서 부활과 영생을 얻는 진정한 믿음으로 돌아서는 길이다.

마가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