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14-19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하고 있는 제자들과 무리들을 보고 믿음이 없음을 한탄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의 가르침을 따라 고난 없는 영광만 바라보던 제자들에게 고난과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시며 이미 엘리야가 왔는데 사람들이 제멋대로 죽였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산 아래에 있던 아홉명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내용이다.
2-13절이 산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던 세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실패한 내용이라면 14-19절은 산 아래에서 아홉명의 제자들이 능력을 행하는데 실패한 내용이다. 먼저 14-15절은 제자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보니 나머지 제자들은 무리들에게 빙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서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논쟁을 벌인 이유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3:22절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다. 이제 귀신의 두목의 힘을 가진 예수가 없으니 너희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율법학자들은 말했을 것이다. 이 모습은 출애굽기 32장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도자가 없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불신앙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몹시 놀라서 예수님께 달려왔다. 몹시 놀랐다는 말은 주로 놀라운 기적이나 가르침이 나타났을 때 하던 말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아직 아무 일도 행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영광의 빛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출애굽기 34:30절에서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라고 했다. 만약 예수님 얼굴이나 옷에 광채가 남아 있었다면 두려워하며 가까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리들이 몹시 놀라 달려온 것은 그 동안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 때문에 그 권위에 몹시 놀란 것이다. 대단한 권위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듯한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제자들의 권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무리들은 예수님께 달려와서 인사했다. 인사했다는 계속되는 과거의 동작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16절은 예수께서 "너희는 그들과 무슨 논쟁을 하고 있느냐?" 라고 질문하신 것이다. 이 때 “그들” 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기에 논란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은 사본들에서도 발견이 된다. Codex Alexandrinus라는 5세기 대문자 사본과 그 밖의 몇 개의 대문자 사본들과 10개가 넘는 소문자 사본들에는 그들 대신 율법학자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다수의 사본들은 단순히 "그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어진다. 어떤 이들은 율법학자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바로 앞에서 말한 무리들이라고 한다.
이럴 때는 15절 전후 문맥을 살펴봐야 한다. 14절에서 예수께서 보신 것은 큰 무리이다. 15절에서 예수께 달려온 것도 역시 "무리"이다. 16절에서 예수께서 질문하셨을 때 17절에서 대답을 한 사람도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께 데려왔다고 했다. 대답은 질문을 받은 사람이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너희"라고 부르며 질문을 한 것이다. 19절을 보면 제자들과 모든 무리들을 함께 묶어 "믿음이 없는 세대" 라고 부르셨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신 대상은 무리들과 제자들이다. 무리들을 가르치고 나서 따로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리들과 제자들은 하나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16절에서 그들은 율법학자들이다.
18절에서 이 사람은 아이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디서나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이란 말은 항상 그런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가끔 발작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어떻게 발작을 일으키는지 그 내용이 이어서 나온다. 먼저 거꾸러진다고 했다. 이는 귀신이 아이를 땅바닥에 내던진다는 뜻이다. 이는 맹수가 갑자기 공격하여 물어 뜯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그릇 같은 것을 땅에 메어쳐 산산조각을 내는 것을 나타내는 말 이기도 하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포도주 가죽 부대가 터져버리는 것을 나타낼 때도 이 말을 썼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 진다는 것이다. 몸이 뻣뻣해 진다는 말은 원래 건조해져서 딱딱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이의 몸이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진 것이다. 귀신은 아이가 말만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증세를 뇌전증 또는 간질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의사들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의학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증세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귀신은 오늘날도 분명히 존재하며 괴롭히고 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했다라고 했지만 원어는 “충분히 강하지 못했다” 라는 뜻이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 자신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자들의 능력이 귀신들보다 강하지 못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제자들도 착각하고 이 아이의 아버지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아이 아버지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대신 예수님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로 말했기 때문에 대답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라고 한탄하는 투로 말씀하셨다. 19절에서 “세대” 란 말은 마가복음 8:12절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표징을 요구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쓴 말이다. 또 8:38절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바리새파 사람들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어서 19절 뒷부분에서는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임박한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러한 기적을 보여주실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무리들에게까지도 놀라운 가르침을 들려주시고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그러한 사역은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라고 하셨다. 이는 구약에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그 백성들을 참아주시는 헤세드의 사랑이다. 그동안 예수님은 그러한 사랑으로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시면서 변화되길 바라며 참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책망하시면서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를 책망하시면서 가르치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의 실수는 전에도 귀신을 쫓아내었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 아이를 데려온 사람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기도해서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계속 반복되면 나중에는 "내가 기도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내가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능력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절대로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져온 모든 문제들은 우리를 보고 우리에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께 가져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