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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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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9:2-8장

차 임할 영광 보여주시며 따라오라고 하신 예수님

2022. 6. 30.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9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9:2-8 예수께서는 자기들 생각을 따라 예수님을 책망하며 대적하던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하나님께서 장차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셨고 음성으로 들려주시며 자기 생각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붙잡고 심하게 꾸지람하던 베드로에게 뒤로 물러가 모두를 해산시키라 명령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만 자신의 군사로 재소집을 하시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재림시에 그들을 부끄러워하신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시는 장면을 본보기로 보여주시며 소망을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도록 하시는 장면이다.

오늘 말씀은 “그리고 엿새 뒤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9:1절의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라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엿새 뒤에 세명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신 것이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사람은 맨 처음 부름받은 제자들이다. 이들은 열두제자 중의 핵심제자들이다. 셋이라는 숫자는 증인의 숫자이다. 이 핵심 제자 셋을 증인으로 삼으신 것이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도 이들을 증인으로 데려가셨다. 이 셋은 이제 본문에서 보여질 내용들을 나중에 증언할 증인으로 부름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이 셋을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이들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산은 출애굽기에서 나오는 시내산을 떠올리는 것이다. 높은 산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던 장소를 나타낸다. 이 세사람을 데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할 장소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사람의 증인들 앞에서 변화되셨다. 변하셨다는 말은 모양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모양이 완전히 변하셨는지 3절부터 나와 있다. 3절에는 예수님의 옷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 옷의 모습은 원어를 보면 먼저 빛이 났다고 했다. 빛이 났다는 말은 번개처럼 밝은 빛을 말한다. 또 매우 반짝이는 금속이 강렬한 햇빛을 받아 빛이 나는 모습을 말한다. 이는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이 났다는 말이다. 또 매우 희어졌다 했는데 얼마나 희어졌는가 하면 세상의 어떤 빨래꾼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희어졌다는 것이다.

다니엘 10:5-6절에서도 흰 세마포를 입은 사람을 묘사하면서 "빛난 놋과 같고"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환상이다. 다니엘을 주석한 다수의 주석가들은 하나님의 사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영광스러운 모습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천사에도 적용할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은 계시록 1:12-16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에 가깝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흰 세마포로 상징화 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4절에는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났다고 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두명의 증인이 등장한 것이다. 둘 다 이 땅에서 무덤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둘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과 함께 영광중에 계시던 분이라는 증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어떤 이는 모세가 율법서의 대표이고 엘리야는 예언서의 대표라고 한다. 그래서 둘이 합쳐서 구약성경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엘리야가 먼저 나온 것이다. 구약성경을 나타낸다면 모세가 먼저 나와야 한다. 다른 문제는 엘리야가 예언서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 유대교 랍비들은 모세를 모든 예언자들의 첫번째 대표로 보고 엘리야는 마지막 대표로 본다. 그렇다고 해도 엘리야가 먼저 나온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이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등장하는 부분은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의 끝부분인 4:4-6절에 나온다. 먼저 4절은 모세에게 명한 법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과거에 모세를 통해 호렙산에서 받은 법을 기억해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5절에는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라고 했다. 모세는 과거에 하나님의 법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역할은 이미 과거에 끝났다. 그러나 엘리야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게 전에 엘리야를 보낸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주된 증인으로 나타난 것은 엘리야가 앞으로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리는 사람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가 주된 증인으로 나온 것이다.

이 두사람은 모두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곧 하나님이라고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증인이란 직접 현장을 목격한 자들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맞다 라고 하려면 하나님과 대면하여 본 사람들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두사람과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저는 이 두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인들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본 베드로의 반응이 5절에 나온다. 5절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베드로가 대답하면서 말했다” 라는 말이다.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말한 것은 베드로가 목격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말했다는 뜻이다. 놀라운 광경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며 말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다. 하나는 당신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이다. 초막이란 말은 초가집이 아니라 천막들이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성막을 나타낼 때 주로 썼다. 성경번역마다 다르지만 천막이나 장막이나 초막 모두 같은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막절을 지킨다. 과거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이 다시 임하길 기대하면서 기념하던 절기이다. 베드로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장막절을 지켰다. 베드로는 그동안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임했다라고 생각하고 출애굽 때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천막치고 살던 때처럼 하나님과 함께 살 장막 세개를 짓자고 한 것이다.

이 장막은 하나님이 거주할 장소를 가리킨다. 출애굽기 25:1-9에 보면 하나님의 장막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상세히 가르치고 있다. 계시록 21:3절에는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라고 했다. 계시록도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보고 장막을 짓자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장면에서 큰 실수를 했다. 그 실수는 베드로가 천막 세개를 세우자고 한 것이다. 이는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를 같은 수준으로 보고 셋을 함께 공경하겠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야와 모세는 예수님과 같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과 공유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8절에서 둘은 사라지고 예수님만 남아 있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고난에 참여하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실 수 있다.

6절에서는 베드로가 이처럼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베드로가 뭐라고 말했어야 했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몰랐다는 말은 완전히 몰랐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베드로 혼자만 그랬다는 것이 아니다. 6절 후반부에는 그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명의 제자들이 다 너무 놀라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머리 속이 텅 빈 것처럼 모든 것이 하얗게 사라져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겁에 질렸다는 말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고 두려워할 때 나온다. 세명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엉뚱한 헛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들이 진짜 놀랐다는데 있지 않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영광이 너무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황홀경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제자들이 정신없는 소리를 하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7절에서 구름이 일어나서 산을 덮었다 했다. 여기서도 3절과 마찬가지로 “되었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덮게 “되었다” 는 뜻이다. 높은 산에서 구름이 산을 덮는 일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덮는다는 말은 앞에서 초막이란 말과 같은 말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초막이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천으로 덮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름이 덮는다는 말은 손으로 지은 장막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름으로 덮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출애굽기 40:35절에 나온 것과 같은 내용이다. 출애굽기 40:35절에 보면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라고 되어 있다. 구름이 덮힌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그곳에 임한 것을 나타낸다. 구름이 덮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 임하신 것이다.

또 이어서 음성이 들리게 되었다. 되었다는 말은 3절에서도 나오는데 3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뜻이라면 7절에서 “되었다” 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 음성으로 들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 임하신 증거를 이번에는 음성으로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 내용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것이다. 똑 같은 말이 예수님의 침례 때도 나왔다. 다른 점은 예수님의 침례 때에는 “너는” 였는데 여기서는 “이 사람” 으로 바뀐 것이다. 침례 때에는 예수님께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에 "이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 이란 말은 단 하나 뿐인 아들이나 딸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창세기 22:12절에서 나온 아브라함의 외아들과 같이 아주 귀한 자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귀히 여기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이유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이다.

이는 세 제자들의 잘못을 책망하는 말이다. 제자들은 지금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만 누리려 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대표로 말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임 당하고 사흘 후에 부활하신다 하시자 그러면 안된다고 예수님을 책망했다. 이런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사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순교자의 길을 따라 오라고 한 것이다. 바로 그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8절에 보니 갑자기 그 영광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예수님만 홀로 그들과 계셨다. 이제 그 영광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영광의 예수님은 눈 앞에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말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는 예수님을 반대했지만 이젠 그 말을 듣고 따라가야할 현실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세 명의 제자들은 장차 우리 모두에게 나타날 영광을 미리 보았다. 그 영광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현재의 고난을 견디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도 로마서 8:18절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한 것이다. 또 로마서 8:25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가다가 겪는 현재의 고난을 참고 또 참으며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견딜지 걱정할 필요 없다. 로마서 8:26절에서 바울은 또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시기 때문에 능히 견디고 이길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세상 영광만 바라고 세상 영광을 이루게 해 달라고만 기도한다면 오늘 말씀에 나온 세 제자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섬기는 것이고 우상숭배보다 더 악한 죄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도록 하자.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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