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32-9:1 예수께서는 자신을 붙잡고 심하게 꾸지람하던 베드로에게 뒤로 물러가 모두를 해산시키라 명령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만 자신의 군사로 재소집을 하시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재림시에 그들을 부끄러워하신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부분적으로 희미하게 아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으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자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될 줄 알고 따라 다녔다.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이기적인 마음으로 해석했던 것을 제자들도 역시 그렇게 해석했던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은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인정하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정말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이 고난받고 배척받아 십자가에서 죽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가장 듣기 싫어하던 말이었다.
32절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을 드러내놓고 말씀하셨다 했다. 원문에서 “드러내 놓고” 라는 말이 “말씀하셨다” 는 말보다 뒤에 와야 정상인데 앞에 있다. 이는 “드러내 놓고” 라는 말을 강조한 것이다. 제자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드러내놓고 드러내놓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비유로 숨겨서 말씀하시는 것의 반대말이다. 상대가 싫어하고 낙심할 것을 안다면 비유적으로 말하거나 우선 숨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정말 싫어하고 낙심할 만한 말을 솔직하게 그대로 다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그냥 한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원문에서 이 말은 한참동안 가르치셨다는 뜻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싹 잡아 당기고 그에게 항의했다 했다. 새번역에서 “바싹 잡아 당기고” 라고 번역했고 개역은 "붙들고"라고 번역한 말은 절대로 점잖은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거칠고 건방진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또 새번역에서 "항의했다"고 번역하고 개역은 "간하매"라고 번역한 말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근거해서 그 의미를 왜곡시켜 번역한 것이다. 본래 이 말은 30절에서 예수께서 엄중히 경고했다는 말과 같은 말인데 심하게 꾸지람했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어린아이나 제자들 꾸지람하듯 심하게 나무랐다는 뜻이다.
이는 베드로만의 생각이 아니다. 모든 제자들의 공통된 생각을 베드로가 대신 말한 것이다. 예수님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으려고 “그렇게 하기만 하면 가만 안둘겁니다!” 라는 식으로 협박하는 투의 말이다. 심하게 꾸지람을 했다는 말은 시작했다는 의미의 현재형이기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꾸지람하기 시작했다 라는 뜻이고 한참동안 계속 꾸지람했다는 뜻이다.
33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서셔서 그의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여기서 꾸짖었다는 말과 베드로가 예수님께 항의했다는 말도 같은 말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자 이번에는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베드로를 꾸짖으신 것이다. 베드로가 잘못했다면 베드로만 꾸짖어야 하는데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이는 모든 제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기에 제자들 모두를 꾸짖으신 것이다. 베드로는 꾸짖기를 시작했다고 했기에 거품을 물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예수님을 나무란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번 꾸짖으셨다고 되어있다.
꾸짖으면서 하신 말씀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이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는 모든 제자들의 뜻을 대변하여 예수님께 죽으면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단번에 사탄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 앞에 서서 예수님을 대적하던 베드로는 대장인 사탄이 되어 자신의 부하들을 뒤에 두고 예수님과 맞서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뒤로 물러가라는 말은 패배를 인정하고 뒤로 돌아가서 네 군대를 해산하고 완전히 흩어지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놀라운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어야 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도 분명히 알았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대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란 예수님의 제자들과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대로 다윗과 같은 강력한 정치와 군사 지도자가 나타나 주변나라를 복종시키고 로마제국과 같은 강력한 이스라엘을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이 로마황제처럼 되면 그 때 제자들은 각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일이다. 그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사탄이 기뻐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른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은 했지만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인 그리스도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똑 같은 생각이었다. 이는 마치 지난 주 말씀에서 소경이 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나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 것과도 같은 것이다.
34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나온다.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를 책망하셨다면 열두제자들을 가르치셨어야 했다. 그런데 34절에는 무리들을 불러놓은 후 라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자들도 함께 불렀다고 되어 있지만 직접 부르신 대상은 무리들이다. 이는 열두제자들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온 무리들 모두에게 제자들과 함께 가르치신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많은 무리들을 이끄는 군대의 대장 노롯을 하며 예수님을 대적한 것이다. 나머지 열 한 제자들은 베드로의 휘하에 있는 지휘관들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무리들을 제자들과 함께 불러 말씀하시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내용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고 하는 사람은” 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끄는 사탄의 군대를 해산시키라고 명령하신 뒤 그리스도인 자신의 군사로 무리들과 제자들을 다시 소집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예수님 뒤를 따라 온다는 말은 앞에서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나라는 말과 정확히 반대말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모인 사탄의 군대는 완전히 물러가라며 해산 명령을 내리시고 이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따라올 사람들만 따라오라고 다시 소집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사람들만 계속해서 따라오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진짜로 따라 가려면 첫번째로 할 일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기의 생각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사순절 기간에 초콜렛이나 고기를 안먹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로마황제 같은 위대한 왕으로만 생각하고 자신들을 잘 살게 해 줄 분이라고 생각하던 그 자기 중심적인 성경해석을 완전히 버리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고 했는데 베드로는 나중에 거꾸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다. 자기의 생각을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예수께서 책망하신 것처럼 사탄이다.
예수님을 진짜로 따라 가려면 두번째로 해야할 일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고난을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죽음의 행진을 할텐데 무리들과 제자들도 역시 죽음의 길을 따라 오라는 것이다. 세상의 군대는 칼과 창을 들고 대장을 따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는 자기 십자가를 칼과 창처럼 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로 무장을 한 뒤에 세번째로 할 일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받고 배척당하고 결국 죽을 것을 알고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르라는 명령어는 계속해서 따르라는 뜻의 현재형 명령이다. 33절에서 물러가라는 말은 계속해서 해산시키라는 명령이라면 이번에는 자기 십자가로 무장을 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계속해서 따라가야 한다는 소집명령이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열두 제자들만 그렇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 모두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이 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복음서를 듣던 마가의 교회 성도들도 이 말씀을 듣고 그 길을 따라 순교했을 것이다. 이러한 길이 바로 제자들의 길이기에 메시야에 관한 참된 지식은 오직 예수님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한 결사대와 같은 제자들 사이에서만 알려져야 하는 비밀인 것이다. 그래서 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한 것이다.
35절에서 만약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라 했다. 이는 핍박과 순교가 두려워 피하려 한다면 진짜 목숨을 잃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냥 죽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진짜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순교하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을 것이지만 반대로 그러한 순교를 피하려 하는 자는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다.
36절은 35절의 이유이다. 그 이유는 만약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득이 있느냐는 것이다. “온 세상” 이란 말은 인간의 야망과 성공을 가리킨다. 유대인과 제자들이 갖고 있던 그러한 인간적인 이기적인 야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제 목숨을 잃으면” 이란 말에서 “잃으면” 이란 말은 법정에서 받는 형량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적 성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최고로 성공했다 해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마치 사형 판결받고 교도소에 갇히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라는 뜻이다.
또 37절은 세상적으로 성공했다 해도 모든 것을 다 잃고 사형수가 되는 것과도 같다고 하신 이유를 설명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냐는 것이다. “되찾는 대가”란 오늘날 환율과도 같은 것이다. 한국 원화를 미국 달러로 바꾸려면 현재 1달러당 1297원 정도가 있어야 맞바꿀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가치는 세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십자가로 무장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기에 영생의 가치는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38-39절에서 영생의 가치를 명예와 수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신다. 앞에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사람”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바뀌었다. 결국 복음과 예수님의 말씀은 같은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음란하고 죄많은 세대 가운데서 부끄러워 한다면 이라는 것이 조건이다. 그러면 그 결과로 예수께서도 그를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언제 부끄러워 한다는 뜻인가 하면 예수께서 아버지의 영광과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러한 제자들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것은 사형수와 같은 죄수인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자기 생각을 따라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고 믿는 사람들은 죄수복을 입고 영원한 감옥에 갇힐 것이라는 뜻이다. 그 반대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 것이다.
9:1절은 제자들과 그 무리들에게 가르침을 마무리하는 내용이다. 그 시작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다.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뭐가 분명히 이루어지는가?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 가운데 와 있는 것을 볼 자도 있다는 말이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권능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이 구절을 보통 세가지로 해석한다. 첫째는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뜻한다는 해석이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이다. 아직도 권능 가운데 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뜻한다면 가능할 수 도 있겠다. 둘째는 오늘 본문 바로 뒤에 나오는 변화산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는 부활과 오순절날 성령 강림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금방 온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온다는 것이고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이다. 문맥으로 본다면 9장에 나오는 변화산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베드로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부담이 된다며 싫어하고 믿는 자가 받을 축복과 위로를 내용만 전하길 원한다. 만약 고난을 빼놓고 믿는 자가 받을 축복만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만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을 빼놓고 그 나마지만 말하는 것도 거짓말인 것이다. 이는 훨씬 고차원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이고 왜곡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내용인데도 계속해서 가르치셨다. 예수님을 바싹 잡아 당기고 예수님을 책망하는 베드로를 보고 제자들의 상태를 아신 뒤에 그들 모두에게 해산 명령을 내리신 뒤에 다시 소집명령을 내리시며 모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만약 자신의 생각을 따라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장차 재림하실 때 그런 사람들을 부끄러워하신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사람의 일인가 하나님의 일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것 같고 거룩한 것처럼 보여도 사람의 욕심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하나님 일인 것처럼 거룩하게 포장해도 가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추어 보지 않으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다. 사람의 욕심인지 하나님의 명령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행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부귀영화 누리며 잘 살 것이라 가르치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자기 십자가로 무장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 욕을 먹더라도 사람들을 가르치고 제자를 삼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진짜 군사가 되어 그 뒤를 따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