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27-30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의 작은 마을들을 향해 가시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시자 제자들은 "그 그리스도"라고 대답하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히 꾸짖듯 경고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벳세다에서 한 눈 먼 사람을 단계적으로 치료하셔서 완전히 보게 하신 뒤에 마을로 가지 말고 가족들에게 가서 먼저 증거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영적으로 눈 먼 제자들의 대표로 베드로가 부분적으로 눈을 뜨는 장면이 이어진다.
2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의 여러 마을로 나갔다고 했다. 이는 벳세다에서 나와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의 작은 마을들을 향하여 나갔다는 뜻이고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를 향해 갔다는 뜻은 아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의 여러 마을"이라는 말은 독특한 표현이다. 5:1절의 형식을 따른다면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이라고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가가 이런 독특한 표현을 여기서 쓴 것은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 큰 도시를 피해 변두리의 작은 마을들로 다니셨다는 뜻일 것이다. 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작은 마을들로 피해다니면서 마을에 있다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려고 사람들에게 노출을 피한 것이다.
가이사랴는 로마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헤롯 빌립이 로마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로마황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 라고 지은 것이다. 그러나 지중해 해변의 로마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와는 다른 곳이기에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구별해서 부른 것이다. 원어에서 빌립보스(Philippos)란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 라는 말과 말을 뜻하는 히포스를 합쳐서 만든 말로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당시 흔히 쓰이던 사람이름이고 도시 이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번역은 헤롯 빌립보스의 소유인 가이사랴 라는 뜻으로 "빌립보의 가이사랴"라고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빌립보는 마케도니아의 빌립보라는 도시와는 상관이 없는 곳이다.
로마황제의 이름과 그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 빌립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도시 근처의 작은 마을들을 향해 가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 황제처럼 온 세상을 다스리는 황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헤롯 빌립처럼이라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들은 황제나 왕의 신하가 되어 부귀형화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질문하셨다. 원어에서 사람들이라는 말 앞에는 관사가 붙어 있기에 “그 사람들” 이란 뜻이다. 이는 앞에서 소경을 데리고 온 그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소경을 눈뜨게 하고 벳세다를 나오면서 제자들에게 “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단순히 소경이 눈 뜨는 것 보고 즉흥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치심을 목격한 사람들이 하던 말을 이들도 따라서 반복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자들은 침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 라고도 한다고 대답했다. 침례요한과 엘리야는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답은 예수님 가까이 있던 열두제자들이 사람들이 했던 말을 들었던 것을 전한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선지자 중 하나라고 한다고 했다. 이 세가지 대답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한 말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서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특히 엘리야가 행한 기적은 구약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들려주신 가르침을 근거로 예수님을 그렇게 본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기적과 말씀만 가지고 예수님을 잘못 본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못 보았다. 1:27절과 2:12절에 나오는 군중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라기만 했다. 3:22절에서 율법학자들은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 기적을 행하는 마술사라고 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향 꼬마로 보았다. 모두가 다 예수님을 잘못 보았다. 오직 1:11절에 나오는 하늘에서 나는 목소리와 귀신들만이 진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았다. 이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목격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했다. 모두 영적 소경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너도 나도 신이 나서 말하자 예수님은 29절에서 제자들에게 직접 물으셨다. 그 질문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것이다. 특별히 원어에는 필요없는 "너희"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뭐라고 말하는 것 말고 제자들 너희들은 뭐라고 말하느냐는 것이다.
원어에는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라는 말은 사람들과는 다른 답이 제자들에게서 나오길 기대하는 말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대답했다. 개역에는 “주는” 이라고 되어 있고 새번역에는 “선생님은” 이라고 했지만 원어는 단순히 “you” 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고 모든 제자들의 대변인으로서 제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말한 것이고 베드로 개인의 생각이 아니다.
베드로의 대답에는 관사가 붙어있어 “그 그리스도” 라는 뜻이다. 이는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윗왕과 같은 강력한 왕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압제하는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강력한 제국을 이룰 것으로 생각했다. 베드로는 유대인인 자신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그리스도" 라는 뜻으로 대답한 것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맞았지만 틀린 것이다. 그리스도가 맞기는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그런 그리스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3:21-22절에 보면 나중에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를 주의하라 하셨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제자들과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모습으로 나타나서 속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문의 상황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도 아무 말씀 안하셨다. 대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경고만 하셨다.
29절에서 베드로가 대답했는데도 30절에서 예수님은 그들 즉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경고했다는 말은 책망했다는 뜻이다. 사실 베드로가 대답했다면 베드로에게만 책망하는 투로 경고했어야 한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고 베드로가 제자들의 대표로 대답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드로의 대답은 베드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의 대답인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 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셨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들의 위협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비밀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만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예수님은 그냥 두셨다. 마치 소경이 단계적으로 보게 되는 것처럼 제자들도 지금은 희미하게 잘못보고 있지만 차차 완벽하게 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을 물으신 것은 자신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지적했겠지만 그러면 다툼만 된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그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예수가 "그 그리스도"였다면 벌써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엘리야나 침례요한이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은 완전한 영적 소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제자들도 완전하게 바로 본 것은 아니다. 마치 다시 보게 된 소경이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이 나무들이 걸어가는 것처럼 희미하게 본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완전한 소경과 희미하게 눈을 뜬 믿는 자들과 완전히 분명하게 눈을 뜬 자들이 섞여있다. 예수를 알고 믿기는 하지만 오늘 말씀에 나온 제자들처럼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자기 중심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바로 눈을 떴지만 아직 나무인지 사람인지 구별 못하는 영적 시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자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겸손히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완전히 밝히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희미하게 보는 제자들을 그대로 두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을 많이 해서 가르친다고 깨닫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성령께서 밝히 눈을 뜨게 하실 것이니 그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우리의 지식과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왜 변화되지 않느냐며 억지로 가르치려 한다면 그것도 영적인 교만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밝히 보게 될 것이니 참고 기다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