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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8:16-18

Dawn Word

마가복음 8:16-18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6. 23.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8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8:16-18 예수께서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보고도 알지 못하고 서로 연관시켜 깨닫지도 못하고 마음이 딱딱해져 있다고 책망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전염병에 걸린 동물들을 살처분하듯 그들을 완전히 버리고 떠나시면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의 공통점을 잘 살펴보고 그들이 걸린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는데도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16절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빵이 없어 그러시는가 보다” 라며 수군거렸기 때문이다.

14절에서 빵을 챙겨오지 않아서 빵이 한개 밖에 없다 했는데 16절에서는 빵이 없다라고 했기 때문에 서구의 학자들은 이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논쟁을 한다. 어떤 이는 그리스어와는 달리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빵을 복수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14절에서는 빵이 한 개고 16절에서는 빵들이 없다고 했지 빵이 없다고 안했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 사람들의 언어에서 숫자 개념이 매우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와 사고에서는 단수냐 복수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의 언어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특히 한국어에서는 단수 복수를 분명히 구분하지 않고 말할 때도 많다. 한국인이라면 16절의 빵이 없다는 말을 한개도 없다라는 말로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 일행이 함께 먹을 빵이 없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경우 식구가 여섯인데 밥이 한그릇 뿐이라면 한국 사람들은 예외없이 "밥이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서양 사람들이라면 밥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고 질문을 할 것이다. 필자의 아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혼자서 수요예배 찬양을 인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성도님이 들어오시면서 "어, 아무도 없네!" 라고 했었다. 분명히 필자가 예배당 안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14절과 16절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서구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기에 마가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실수가 아니다. 신약성경이 그리스어로 쓰여졌다고 그리스 사람들의 사고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신약성경은 히브리적 사고를 가진 유대인들이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 뜻을 못알아듣고 있었기 때문에 빵이 없어서 그런가보다라고 수군거렸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또 두가지 비슷한 말을 연이어 사용하셨다. 두가지 비슷한 말은 “알지 못하느냐?”와 “깨닫지 못하느냐?” 이다. 이 경우에도 두개의 질문 사이에 접속사가 있어야 하는데 접속사가 없다. 이는 숨도 안쉬고 단번에 속사포처럼 “알지 못하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쏘아대신 것을 표현한 것 이다. 많은 학자들은 보통 이 두 단어를 똑같은 의미의 반복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비슷한 뜻이지만 똑같지는 않다. 첫째 “알지 못하느냐?”는 눈으로 본 것을 깊이 따져보고 생각해서 알게 된 것을 뜻한다. 이는 15절의 잘 보라는 뜻의 “주의하여라” 라는 말과도 연결되는 말이다. 둘째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은 여러가지 기본적인 의미를 놓고 판단해서 알게 된 것을 말하다. 마치 법정에서 여러 증인들의 증언들을 듣고 나서 “아하!” 하며 무엇이 진실인지 알게 되는 것을 말하다. 이는 15절의 비교해서 본다는 뜻의 조심하라는 말과 연결되는 행동이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수도없이 들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도 여러차례 보고 직접 경험했다. 그러면 그것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고 알았어야 했다. 여러가지 사실들을 비교해 보고 “아하!” 하고 깨달았어야 했다. “아하!” 하고 깨달았어야 하는 사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사실이다. 이제 예수님만 의지하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헤롯과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이 두종류의 사람들은 분명히 보고 듣고도 깨닫지 못해서 완전히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두종류의 사람들을 비교해 보고 “아하!” 하고 그렇게 하면 멸망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연이어서 “알지 못하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신 뒤에 또 이어서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져 있느냐?” 라고 하셨다. 마음이 무디어져 있다는 말은 마음이 군살 붙은 발바닥처럼 딱딱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6:52절에서 “빵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 라고 할 때에도 나온 말이다. 이는 듣고도 보고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관찰해서 알고 비교해보고 “아하!” 하고 깨달은 것은 부드러운 마음밭에 간직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밭이 돌로 포장된 로마제국의 길처럼 굳어져 있어어 받아들이질 못한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2:9에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라고 했다. 바울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 출세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미천한 제자들이 높은 자리에 설 생각만 마음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만 한다면 헤롯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썩어져가는 불신앙의 전염병에 감염되기 쉽다는 것이다. 지금 제자들의 상태는 헤롯이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15절에서도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무조건 그들처럼 될것이니 조심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귀먹고 말못하는 사람과 맹인을 치료한 이야기 사이에 4000명을 먹이신 기적이 나온다. 또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빵이 없다고 걱정하는 제자들 이야기도 이 사이에 끼워져 있다. 이는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빵이 없다고 걱정하는 제자들이나 모두가 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18절에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라고 질문하신 것이다. 볼 능력은 있는데 보지 못하고 들을 능력은 있는데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지도 못하느냐고 질문하시며 책망하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은 마음 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자신들은 높은 자리에 앉게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빵이 없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이나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수많은 놀라운 기적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이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17:1절에서 금강석 촉으로 된 철필로 마음에 새겼다고 한 것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기에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들을 새기고 간직하며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제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똑같이 깨닫지 못하고 우리의 생각을 따라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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