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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8:12-13

Dawn Word

마가복음 8:12-13

깊이 탄식하시고는 완전히 버리고 떠나시는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6. 21.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8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8:12-13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으로부터 온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깊은 탄식을 하시며 제자들이 저들의 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이방인 지역에서 유대인 지역으로 건너가시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몰려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심문하듯 하며 고소할 증거를 찾았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깊이 탄식하시며 표적을 요구하는 이 세대는 아무런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고는 건너편으로 가시는 내용이다.

12절에 보면 이러한 바리새파 사람들을 보시고 깊이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예수께서 탄식하신다는 말은 7:34절에서 귀먹고 말 못하는 이방인을 보고 탄식하시며 "에바다" 하는데서 나온다. 그런데 12절에서 탄식한다는 말은 더 깊은 탄식을 나타내는 접두어가 붙어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을 보시고 탄식하시는 것이 귀먹고 말 못하는 이방인을 보고 탄식하는 것보다 훨씩 더 깊은 탄식을 하시는 장면이다. 이 말은 마음 가운데에 있는 깊은 곳에서 나오는 탄식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 예레미야애가 1:4절에도 나온다. 예레미야애가 1:4절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라는 말에서 나온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여 절기를 지키러 나오는 사람들도 완전히 없어진 상태를 보고 탄식하는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이 완전히 멸망한 모습을 보고 탄식하신 것이다. 저들은 마치 바벨론 군대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된 예루살렘과도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깊은 탄식을 하신 뒤에 하신 말씀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요구하는가!” 이다. 세대 라는 말은 창세기 7:1절에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또 시편 95:10-11절에서는 “이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한다” 했다. 이 시편에서 이 세대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던 세대를 가리킨다. 이처럼 세대라는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대라는 말을 모든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지않고 이스라엘의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셨다. 이 세대는 바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최고로 존경을 받던 최고로 경건한 바리새파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목자들이고 지도자들이었다. 스스로 하나님의 대리인들이고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자처했던 저들에게 노아시대의 타락한 사람들과 같고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 조상들과도 같다고 예수께서 비유하신 것은 저들에게는 엄청난 모욕이다. 예수님은 이들 바리새인들이 소경이고 귀머거리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병은 앞에서 치료하신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도 치료하실 수 없는 병이었다. 마태복음 15:14에서도 예수께서는 저들을 향해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라고 했다. 소경 인도자 같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이 세대라는 말을 두번이나 반복하신 것은 저들이 영원히 기회를 놓쳤고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어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고 하셨다. 이는 3:28-29에서도 “성령을 비방한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라는 말을 하실 때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도 역시 용서받지 못할 죄를 강조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 말씀하신 내용은 “이 세대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 부분은 영어나 한글이나 모두 의역한 것이다. 원어는 맹세할 때 공식처럼 쓰는 말인데 뒷부분이 생략된 말이다.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만약 이 세대에게 표징이 주어진다면” 이다. 그 뒤에 생략된 말은 보통 “하나님께서 나를 쳐서 쓰러뜨리길 바란다” 라는 말 이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 악한 세대들에게 표징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를 하시는 것이다.

왜 예수께서 이런 맹세를 하시는 것일까? 예수님은 하늘로 부터 온 수많은 증거들을 이미 수도없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저들이 그렇게도 멸시하던 이방인 중에서도 더 무시하던 이방여인도 믿었다. 저들이 그렇게 멸시하던 이방인 중에서 가장 저주받은 사람인 귀먹고 말못하는 사람도 믿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인 저들이 믿지 않고 하늘로부터 온 증거를 내놓으라 하니 이러한 소경들에게는 더이상 보여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저들은 마치 노아시대에 하나님을 완전히 거부하던 사람들과 같다. 또 광야에서 그렇게 많은 표적들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던 사람들과도 같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완전히 버리셨다. 예수님도 이처럼 하나님을 거부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완전히 버리셨다는 뜻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서 4000명의 이방인들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신 뒤에 표적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기적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적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구약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전문가들인 바리새파 사람들이 절대로 모를 수 없다. 분명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놀라운 사건에 대해 듣고도 왜 하늘로 부터 온 표징을 구했을까?

저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들 뜻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멸망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온 것이다. 저들의 시각에서 볼 때에 예수님은 자신들의 적이고 하나님의 적인 이방인들을 축복하고 왔기에 예수님은 이방 사람들을 지배하는 귀신들의 왕의 대리인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자기들을 맞추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자기들에게 맞춘 것이다. 이는 예레미야 16:12절에 나온대로 우상숭배보다 더 악한 죄이다.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니 우상숭배보다 더 악한 죄인 것이다.

이렇게 맹세하시고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대화를 마치셨다. 예수께서 저들에게 이렇게 반응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저들을 완전히 버리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우상숭배자들보다 더 악한 바리새파 사람들은 제자들에게 반면교사로 사용되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탄식은 예수님의 뒤편에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있던 제자들에게 주는 경고이다. 너희들도 자기들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으며 저들처럼 스스로 높아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면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13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다시 건너편으로 가셨다. “떠나” 라는 말은 의도적으로 내버린다는 뜻이다. 이는 마가복음 13:1-2절에서도 나오는데 성전을 떠나시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라고 하신 것과도 같다. 13:1절도 성전을 내버리고 가시면서 완전한 파괴를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껍데기만 남아있던 유대교의 외형적 상징이었다. 당시 성전을 근거로 권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은 사두개파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성전의 기능은 축소되었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르치는 율법이 성전을 대신해서 이스라엘의 진짜 실제적인 상징이 되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유대교의 실제 상징인 율법을 주관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완전히 버리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전 파괴 선언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무서운 말씀이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건너편은 다시 이방인 지역으로 가신 것이 아니고 벳세다쪽으로 가신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을 고소하기로 작정을 하고 고소할 증거만 찾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도 저들이 이미 마음으로 예수님을 거부하기로 완전히 결정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들은 전염병에 걸려 치료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과 같았다. 저들은 마치 조류 독감에 걸린 닭들과도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이상 저들과 논쟁하지 않고 그냥 저들을 완전히 살처분 선언을 하시고 떠나신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을 버리셨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택한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저들과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저들이 갖고 있는 전염병이 제자들에게 전염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전염병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병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셔서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시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제자들도 이런 전염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경고를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편에 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라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간 뒤 율법을 정비하고 가르쳐서 이스라엘을 재건하려던 구별된 삶을 살던 신실한 사람들이었다. 바리새파라는 이름 자체가 자신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자 신실한 처음 모습은 잃어버리고 겉으로만 거룩한 척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지키려는 집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자신들의 권위 아래 두다 보니 교만해져서 예수님까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권위 아래에 두려고 했던 것 뿐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제자들에게 반면교사로 삼아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신실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권위를 갖게 되자 변질된 것처럼 신실한 제자들도 나중에 권위를 갖게 되면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거나 오늘날 교회를 보아도 이러한 바리새파 사람들의 전염병에 걸려 변질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필자는 이를 바리새파병이라고 부르겠다.

이러한 바리새파병은 하나님 말씀에 열심이 특심인 사람들만 주로 걸리는 병이다. 이 병의 바이러스가 믿는 자들에게 들어갔다고 모두 다 바리새파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 있어 자신이 열심히 공부를 한 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가르친다는 것은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게 가르치다 보면 그러한 사람들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 때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예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따라 자신을 쳐서 끊임없이 복종시키는 사람들은 이 병의 바이러스들을 이기고 이 병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점차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 갈수록 그들 안에서 이 병의 바이러스가 급격하게 늘어가게 된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이라는 약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넘기면 이 특효약도 듣지 않게 되고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 와 있는 사람들은 격리시키고 살처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리새파 사람들이 치료가 불가능하기에 살처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들을 버리고 떠나시며 장차 살처분 하려고 격리를 선언을 하신 것이다. 이어지는 15절에서 예수께서 누룩이라 비유하신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제자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이러한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 즉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바리새파 병의 바이러스를 조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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