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10-11 예수께서 이방인 지역에서 유대인 지역으로 건너가시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몰려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심문하듯 하며 고소할 증거를 찾았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무리를 앉게 하시고 빵과 물고기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약 4000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배를 타고 다시 유대인 지역으로 건너가셨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하늘로부터 온 표징을 요구하며 고소할 증거를 찾는 내용이다.
10절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시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방인 지역인 데카폴리스 지역에서 유대인 지역인 달마누다 라는 곳으로 가신 것이다. 달마누다 라는 지명은 다른 기록들에 나타나지 않기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일부 사본들에는 마게다 또는 막달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마태복음 15:39절을 보고 후대의 필사자들이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막달라는 성읍의 이름이라면 달마누다는 작은 동네나 항구 이름일 것이다.
11절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자기들이 모여 있던 곳에서 나왔다. 마가는 특별히 밖으로 나왔다는 말을 썼기에 일부 성경 해석자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서 나왔다는 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왔다고 했기에 각자의 집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함께 모여 대책을 의논하다가 예수께서 그 지역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함께 나온 이유는 예수님께서 유대교 정결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7:1-23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과 또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논쟁을 벌였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음식에 관한 정결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 사람들을 더럽게 한다 했다. 이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심각한 욕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함께 모여 예수를 어떻게 처단할까 의논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과 심각하게 충돌한 뒤 이들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멀리 두로지방으로 피신을 가셨다가 외지고 험한 헬몬산 자락을 지나 데카폴리스 지역으로 가셨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곳에서 이방인들을 치료해 주신 소문과 4000명이나 되는 이방인들을 기적을 통해 먹이셨다는 소문도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을 구별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정한 사람과 정결한 사람도 구별했기 때문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정한 음식이나 부정한 사람이 바로 전염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들은 이런 것들을 모두 피하고 격리시켜서 자신들만 정결함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한 정결함이 바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상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로 여기는 예수님께서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정결법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저들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전염병 같은 죄인으로 판정해서 신앙공동체에서 내쫓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며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그런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이방인 지역에 가서 치료가 불가능한 전염병 같은 더러운 이방인들을 치료하고 먹이는 것을 보고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예수님을 함부로 정죄해서 내쫓거나 죽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적들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기적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모여서 의논한 뒤 예수님께 나아와서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온 표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따졌다. 따진다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함께 요구한다는 뜻이다. 여럿이 함께 몰려와 증거를 대라며 심문하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다. 바리새파 사람들 여럿이 떼거리로 몰려와 예수님께 아주 적대적인 태도로 따지는 것을 그림처럼 나타낸 말이다.
그런데 11절 맨 끝에는 “그를 시험하면서” 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이 말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적대적인 태도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저들이 따지는 목적은 무엇을 고치거나 바로잡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험한다는 말은 원래 고소할 증거를 찾다는 뜻이다. 따라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을 고소하려고 결정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 따지는 이유는 예수님을 고소할 증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위험한 전염병을 퍼트리는 강력한 전달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시험하다는 말은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고 돌아서는 모습에서 대부분 쓰였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이러한 전염병에 걸려 모두 멸망했다. 따라서 저들은 단순히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전염병의 강력한 전달자로 고발할 증거를 만들려는 것이다.
표징이나 표적으로 번역된 말은 구약에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하는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표징을 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4:1-9절에 보면 모세도 하나님께 표징을 요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고 모세의 손이 문둥병에 걸리게 하는 표징을 주셨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도 불을 내려 번제물을 태우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이러한 기적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이미 이러한 기적을 수도 없이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을 구하시려는 것이다. 귀신도 쫓아내시고 문둥병도 고치셨다. 혈루증 여인도 고치고 회당장의 딸도 살리셨다. 제자들을 통해서 수많은 기적들을 보여주셨다. 광야에서 5000명을 먹이셨고 물 위를 걸으셨다. 이런 수많은 기적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정했다. 이러한 표적들 자체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저들은 예수님께 귀신의 왕의 힘을 입어 능력을 행한다 했다.
따라서 이들이 오늘 본문에서 구하고 있는 표징은 더 놀라운 기적을 보여달라는 뜻이 아니다. 저들의 말은 이런 뜻이다. “기적은 충분히 봤으니 됐고 이제 하나님을 설득해서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줘” 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귀신들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요구하는 표적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시는 것 뿐이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께서 모세 앞에 나타나신 것처럼 저들 앞에 나타나신다 해도 귀신의 불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셔도 귀신이 나타났다며 믿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전염병을 전달하는 괴물 같은 존재라고 무리들 앞에서 증명하려는 것 뿐이다.
저들이 이처럼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고 예수님께 도전한 것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얻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자신들이 쌓은 부나 명예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쌓아올린 이런 안전망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믿지않고 도전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쌓아올린 것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오늘 본문에 나온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전하며 자신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