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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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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8:4-5

말이 아닌 행동으로 불쌍히 여기길 원하시는 예수님

2022. 6. 17.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8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8:4-5 무슨 수로 이 많은 이방인들을 먹이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는지 물으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몰려온 이방인들을 사흘 동안 가르치시다가 그들이 굶주린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불러 불쌍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제자들에게 가진 빵이 몇 개나 있는지 물으시는 장면이다.

바로 앞부분에서는 예수께서는 예수님과 사흘 동안 함께 있던 이방인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시고 불쌍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과는 달리 제자들은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상관없는 사람들로 여겼다. 5000명의 남자 유대인들을 먹일 때는 비용걱정을 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나온 4000명의 이방인들을 먹일 때는 “어느 누가 무슨 수로 이 모든 사람이 먹을 빵을 장만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을 했다.

유대인들을 먹이라 하실 때에는 주변에서 사다 먹일 의지는 있는데 돈이 부족하다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예 불가능하다며 사다 먹일 수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고 한 것이다. 물론 6:35절에서는 외딴 곳이라는 말이고 8:4절에서는 광야 즉 사막이라는 뜻의 말이기에 장소가 다르기는 하다. 사막이란 주변에 가까운 곳에 인가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자들의 이러한 말 속에는 제자들이 이방인들을 먹일 생각조차 없다는 마음이 들어있다. 어째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을 경험하고도 이런 말을 할까? 어쩌면 제자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이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만 베푸실 수 있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8:17-21절에서 예수께서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이다.

이방인들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경험한 뒤에도 여전했다는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후 대규모 핍박이 있기 전에까지도 제자들은 이방인들에게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방인들을 말씀과 기적으로 가르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먹이셨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유대교에서 배운대로 이방인들은 부정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그들과 구별하여 자신들을 정결하게 한다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5절에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셨다. 무리들이 사흘간 굶었다면 제자들도 먹을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빵 일곱개는 자신들이 먹으려고 남겨둔 모든 식량일 것이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는 것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가진 전재산인 빵을 모두 다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는 6:38절과 같은 말이다. 이미 경험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나게 하시려고 빵이 몇 개나 있는지 물으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질문을 하신 것은 이방인들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제자들에게 오천명의 유대인들을 먹이신 것과 똑같이 이방인들도 먹이시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는 달리 이방인들도 똑같이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이시겠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만 사랑하겠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앞으로는 혈통의 유대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먼저 구원하신 것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기 대문이다.

이는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가르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나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만 멈추면 안된다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보고 예수님의 군대로 자원해서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예수님 때문에 자신들은 크게 출세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도 자신의 제자가 되려면 불쌍히 여기는 데서 멈추지 말고 각자가 가진 전재산을 내놓으면서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8절에서도 불쌍히 여긴다는 말이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말과 짝으로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6:37절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하신 말씀과 8:5절에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라고 하신 말씀에서 배운 것을 나중에 기록한 것일 것이다. 말로만 불쌍히 여기며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가진 빵이 자신들 먹기도 부족하다며 내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인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신 질문의 뜻이다. 제자들은 전재산이 일곱개라고 대답했다. 제자들은 갈등을 했겠지만 일곱개라고 대답한 순간 이미 갈등은 조정된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말은 없지만 일곱개 빵 모두를 예수님 뜻에 순종하여 예수님 앞으로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이방인들은 부정하고 자신들은 거룩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동일하게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마음으로만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불쌍히 여기신 뒤에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치료해 주시거나 먹여주셨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말로만 주님의 군사가 되어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그 충성의 다짐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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