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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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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8:1-3

함께 불쌍히 여기길 원하시는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6. 16.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8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8:1-3 예수께서는 몰려온 이방인들을 사흘 동안 가르치시다가 그들이 굶주린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불러 불쌍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함께 고통을 느끼시는 깊은 공감의 탄식을 하시며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고 말씀으로 치료해 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모여든 큰 무리들이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장면이다.

8:1절은 ‘그 무렵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이는 7:31과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이방지역인 데가볼리 지역에서 귀먹고 말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셨을 무렵이라는 뜻이다. 이 기적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계속 이어서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 나온다. “다시 큰 무리가 모여있었는데” 라는 말은 “다시 큰 무리가 모여들었을 때” 라는 뜻이다. 다시 라는 말이 나온 것은 6:34에서 유대인 지역에서 큰 무리가 모여들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때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나타내는 또 다른 말은 “먹을 것이 없었다” 라는 말이다. 이것도 “먹을 것이 없었을 때” 라는 뜻이다. 바로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신 것은 바로 이러한 때 이다. 이방인 지역에서 귀먹고 말못하는 사람을 치료했을 무렵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고 먹을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서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부르신 이유는 모여든 이방인들에게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었을 때 제자들을 가까이 오라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가엾다” 라고 하셨다. 이는 6:34절에서 불쌍히 여긴다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쌍히 여기신 이유는 서로 다르다.

예수께서 6:34절에서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목자가 없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6:34절에서 모인 무리들은 유대교 신앙공동체에서 쫓겨난 죄인들인 유대인들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 배우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기에 불쌍히 여기셔서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6:34절에 나오는 무리들을 보자마자 불쌍하다 하셨다. 하지만 8:2절에서는 함께 있은 지 사흘 후에 먹을 것이 없는 저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흘동안 이 무리들과 무엇을 하셨을까? 사흘동안 이 무리들과 무엇을 하셨기에 사흘 후에야 불쌍하다 하셨을까? 이 무리들은 처음에는 기적의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을 것이다. 물론 질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구경거리를 보려고 사흘간 굶어가면서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흘 내내 치료해 주셨기에 그 많은 무리들이 순서를 기다렸을 가능성도 없다. 예수님은 항상 기적을 보여주시는 것과 가르치시는 것을 병행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항상 기적보다는 가르침에 더 중점을 두셨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이방인 무리들을 가르치신 일을 사흘동안 함께 있었다는 짧은 말로 압축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는 유대교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다면 이번에는 원래부터 유대교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다. 둘 다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 관점에서 보면 부정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들과 사흘동안 함께 지내시며 가르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들 관점에서는 예수님도 역시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이어지는 8:11절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심각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가 더러운 죄인들과 접촉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증거를 대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들에 대한 이런 시각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상종못할 이방인들과 사흘동안 함께 하시며 저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 주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방인들에 대한 시각은 제자들도 유대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예수님의 마음과는 반대인 교만한 마음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런 이방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 뿐만이 아니라 굶주리고 있는 이방인들의 배도 채워주시려는 것이다. 만약 그냥 보낸다면 가다가 길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라며 불쌍히 여기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한 것이다. 제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먼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는 말은 단순히 데가볼리 지역 중에서 먼 곳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먼 곳이라는 말은 거리도 멀고 생활권도 다른 먼 이방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데가볼리는 열개의 도시들이 서로 인접해 있는 지역이고 같은 생활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데가볼리 지역에서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이기 때문에 어쩌면 두로와 시돈쪽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이사야 60:4절이 성취된 것이다. 이사야 60:4절은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가 예언한 것은 원래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옴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앞으로 메시야가 올 때 이루어질 일을 예언한 것이기도 한다. 크리스천들은 이 구절을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으로 해석했다.

제자들도 유대인이었기에 이방인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더럽다고 여기고 상종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유대교의 정결법으로 배워온 이방인들에 대한 시각을 쉽게 바꿀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모아놓고 무리들이 불쌍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다. 먼데 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것은 바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예수님 앞에 나온 이방인들을 사랑하는 자녀들로 받아들였기에 그들의 육체적인 필요를 보고 창자가 끊어질 듯 마음이 아프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너희도 함께 창자가 끊어질 듯 사랑하는 관계가 되길 초청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든 이방인들을 다 불쌍히 여기라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 사흘동안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사람이 정결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나아와 배우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사랑하는 제자들이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처럼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이제 이방인이 아니라 형제 자매이기 때문이다. 형제 자매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놓고 저들이 불쌍하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저들이 불쌍하다고 하신 것은 제자들도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빌립보서 2:5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했다. 2:5절 바로 앞에 나온 3-4절에 나온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는 말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교만한 마음은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제외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인 겸손한 마음이란 그런 사람들을 제외시키지 않고 그 사람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와 함께 공감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은 지난 월요 성경공부에서 나눈 베드로전서 3:8절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같은 생각이고 곧 낮은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마음은 함께 고난을 받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것이다. 비난하고 책망하고 정죄하면 모두 정죄하여 죄인으로 쫓아내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같은 교만한 마음이고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마음이다. 낮은 곳으로 내려와 함께 불쌍히 여기며 함께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오늘 말씀에 나온 예수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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