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1-4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버린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정결하다 하시며 유대교에서 전해내려오던 정결법에 정면으로 도전하자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학자들을 대거 갈릴리로 파견해서 조사하게 했다.
이전 말씀에서 게네사렛 사람들은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는 것을 보고 온 지방을 달려다니며 알려서 병자들을 침상채로 예수께 데리고 와서 옷술에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고 했고 손을 댄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았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부정하다고 판단하여 버린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치료해 주시며 가르치시자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을 파견한 내용이다.
1절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 중에 몇 사람이 예수께로 몰려왔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 중 몇사람이 예수님께 왔다는 것은 더 많은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율법학자들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가장 권위있는 율법학자들이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에 심각한 위협이 생겼다고 판단했기에 율법의 전문가들을 대거 파견한 것이다.
이들이 온 이유는 마가복음 1장부터 찾아야 한다. 1:40절에 보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셨다. 2:15절에서는 세리 레위의 집에 들어가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5장에서는 부정한 이방지역에 건너가서 이방인들과 더러운 귀신들을 접촉하셨다. 또 혈루병을 앓는 부정한 여인과도 접촉하셨다. 죽은 야이로의 딸의 시체도 만졌다. 이 모든 것이 다 정결법을 위반한 것이다. 또 부정하다고 정죄받아 쫓겨난 오천명을 먹인 기적도 역시 정결법을 위반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수많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정결법을 위반했다면 예루살렘에서 저명한 율법학자들이 대거 파견될 수는 없다. 그런 문제라면 갈릴리의 율법학자들의 선에서 간단히 끝날 문제이다. 문제는 정결법을 위반한 죄인이 오천명을 먹이고 게네사렛에서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적은 하나님이 아니면 행할 수 없는 것이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 정결법을 위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심각한 문제를 풀기 위해 저명한 학자들을 파견한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 일행을 따라 다니며 감시했을 것이다. 2절을 보면 그러다가 드디어 증거를 목격했다. 그것은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빵이라는 말은 여러 개를 뜻하는 복수이고 그 앞에 관사가 붙어 있다. 일반적으로 보통 빵에는 관사를 붙이지 않는다. 마가복음 8:5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라고 물으셨다. 그 빵에는 관사가 없다. 그런데 원어의 오늘 본문 7:2절에는 “그 빵들” 이라고 분명히 관사가 있는 복수로 되어 있다. 이는 분명히 앞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남은 열 두 광주리의 빵들을 가리킨다. 저들은 한참동안 예수님 일행을 감시했을 것이기에 이 빵들이 기적의 빵이라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찬양하지는 않고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을 본 것이다.
3-4절은 유대인들의 정결예식을 설명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은 이방인 교회성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정결례를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새번역에는 3절 시작과 4절 끝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모든 유대사람들은 손을 주의깊게 씻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킨다는 말은 손으로 꽉 붙잡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항상 잊지 않고 지킨다는 뜻이다. 4절에는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 밖에도 많은 규례들이 있었는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을 씻었다 했다. 단지라고 번역된 말은 오늘날 물 주전자 같은 것이다. 새번역에 나와있는 침대라는 말은 중요한 사본들에는 없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정결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정결법의 자세한 규정을 만들어 철저하게 지키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결법의 규정들이 너무 많고 어렵기 때문에 어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몰라서 어기고 어떤 이들은 알고도 형편이 어려워 어긴 경우도 많았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정결법을 어긴 사람들을 모조리 골라내어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아내었다. 이스라엘이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 이다.
이는 마치 오물이 튀긴 그릇들을 씻지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아까운 것을 왜 버리느냐며 저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그릇과도 같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계셨던 것이다. 세리 레위도 역시 그처럼 버려진 쓰레기였다. 예수님은 저들이 버린 쓰레기들을 꺼내서 씻어 놓으시고는 정결하다 하셨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되자 화가 난 것이다.
우리도 역시 함부로 남을 정죄하며 거룩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안된다. 예수께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우리를 용서하시고 쓰레기통에서 건져내어 깨끗하게 닦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쓰레기통을 뒤져 건져내어 깨끗이 닦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를 뒤에서 비판하고 욕하면 우리도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형제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다. 비판하고 욕하기보다 용서하고 감싸주며 비방하는 말을 들었어도 전하지 말아야 한다.
베드로전서 4:8에서도 만물의 마지막 때가 가까웠다며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라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이 쓰레기통에 버린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는 우리의 경건으로 정결하게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정결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