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51-52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멈추었는데도 마음에 완악한 껍질이 덮여있던 제자들은 놀라기만 할 뿐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풍랑 가운데서 힘들게 노를 젓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안심하라! 나는 나다! 두려워 말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니 잔잔해지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놀라는 장면이다.
5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또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바람이 멈춘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정말 놀랐다. 4:39절에서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멈추었는데 이번에는 배에 오르기만 하셔도 잔잔해진 것이다. 이는 물 위를 걸으시며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시고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셔서 하나님임을 알리셨다. 이제 바람까지도 복종하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은 분명 자연현상 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몹시 놀랐다 했다. 만약 저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다면 놀랄 필요 없었다. 이미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셔서 잔잔하게 하실 때 벌써 알아보았어야 했다.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했을 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아무리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직접 물위를 걸으시며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실 때는 알아보았어야 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씀도 하셨고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멈추었는데도 저들은 깨닫지 못한채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 마가는 그러한 제자들의 병을 제자들의 마음이 무디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무디어져 있다는 말은 마음이 딱딱한 껍질로 덮혀있어서 감각이 없다는 뜻이다. 할례는 마음에 받아야 한다는 말과도 통하는 말이다. 마음에 두꺼운 가죽이 덮여있어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머리로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고 무디어져 있다는 말은 마음으로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52절에서 빵을 먹이신 일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배 안에 12광주리의 빵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열두제자들은 거두어 모은 음식들 각자 한광주리씩 들고 배에 탔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능력을 행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로 들고 가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는 것이 아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도 보고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멈추는 것을 보았는데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음이 마치 딱딱한 각질이 붙은 마음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적을 체험하거나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한다고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신유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들도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믿음을 가진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믿음은 기적이나 신비한 영적 은사들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들 마음에 덮여있는 딱딱한 각질이다. 신명기 10:16절에서는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고 했다. 서로 비유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으라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의 껍질로 자신을 보호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을 구약에서는 완악하다고 하고 우상숭배자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도 성경을 자기들 생각대로 읽고 받아들이던 유대인 들을 두고 마음에 둔해졌다는 말을 썼다. 로마서 11:7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제외하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해졌다고 한 말이 오늘 말씀 52절에서 마음이 둔해졌다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고린도후서 3:14절에서도 바울은 저희 마음이 완악하여 구약을 읽을 때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모두 유대인들의 마음에 자기들 생각이라는 껍질이 덮여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제자들에게 덮여있던 마음의 껍질도 역시 바울이 말한 완악함과 동일한 껍질이다. 만약 우리도 우리 생각을 덮고 있는 껍질을 벗겨내고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의 참뜻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는 제자가 아니라 계룡산 자락의 철학자들이나 도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껍질을 잘라내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순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온 제자들과 똑 같이 세상 영광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