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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6:47-50

Dawn Word

마가복음 6:47-50

나야! 나! 하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6. 3.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6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6:47-50 예수께서는 풍랑 가운데서 힘들게 노를 젓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안심하라! 나는 나다! 두려워 말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는 흥분해 있던 제자들을 즉시 떠밀어 보내시고 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47절에 보면 마가는 이 사건의 증인의 관점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날이 저물었을 때는 저녁 때이다. 저녁 때 제자들은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 또 예수님은 육지에서 홀로 계셨다. 제자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노를 젓고 있었고 예수님은 산에서 홀로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47절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제자들이 밤새 제자리를 돌며 힘들어 하는 동안 예수님은 밤을 새워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다.

48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바람을 거슬러 노를 젓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셨다 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셔서 제일 먼저 제자들을 찾아 보신 것이다. 예수님은 멀리 바다에서 바람과 싸우고 있던 제자들을 산 위에서 보셨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했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만 의지하고 밤새 노를 저었던 것이다.

노를 젓는 작은 조각배를 가지고 노를 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바람이 어느 정도만 세게 불어도 노를 젓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던 곳은 갈릴리 호수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다라 불렀다.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기류 때문에 제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서 빙빙 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힘을 써서 빠져 나가려 해도 나가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밤새도록 제자들은 힘써 노를 저었지만 헛수고였다. 밤새 노를 저으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가는 예수님께서 그시간 산에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본 시각은 새벽 4-6시 사이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 어두울 때였다는 것이다. 한여름의 5-6시 쯤이라면 밝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며 두려워 할 수 없다. 여기서 숨겨진 예수님의 기적이 발견된다.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어도 유령이라고 할 만큼 어두운 때였지만 예수님은 멀리 산에서 제자들을 알아보신 것이다. 이은 분명히 놀라운 능력이다.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바다 위를 걸어가셨다. 그런데 걸어가신다는 말은 현재형이기 때문에 창세기 1:2절의 하나님의 영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제자들을 구하러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자들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셨다고 했기 때문에 단순히 구하러 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구하러 가셨다면 즉시 제자들의 배에 오르셔서 제자들을 구해주셨어야 했다. 이 부분을 제자들을 구출하러 가는 예수님으로 이해한다면 마가와 Codex Sinaiticus 필사자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제자들이 탄 배에 가까이 오셔서 지나쳐 가시는 것은 제자들에게 물위를 걸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제자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미련한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한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능력을 행하시는 다윗과 같은 능력있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2절에 나온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박국 3:15에서도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라고 했다.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광야에서 무리들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이신 것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을 잘 아는 제자들은 바로 깨달았어야 했다. 그런데 제자들과 무리들은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이 다윗과 같은 메시야로 생각하고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자신들도 한자리씩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창조 전부터 계셨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직접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48절에서 예수께서는 어두운 새벽에도 멀리서 제자들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49절에서 제자들은 가까이에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신 유령으로 생각하고 놀라 소리를 질렀다. 50절에서 그 이유를 모두가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라 했다. 놀랐다는 말은 본래 휘젓는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5:7절에서는 물이 휘저어질 때라는 뜻으로 쓴 말이다. 이 말이 심리적인 상태를 나타낼 때는 그 마음이 휘저어져서 혼란 상태에 빠졌다는 듯이 된다. 만약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곧 하나님임을 깨달았다면 물위를 걸어오셨을 때 반가워 했어야 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걷는 모습을 보여줘도 알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장면에서는 항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뒤따른다. 물위를 걸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도 역시 구약의 하나님과 동일하게 말씀하셨다. 말씀하셨다는 말도 현재형인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번째 하신 말씀은 “안심하라” 는 말이다. 이는 용기를 내라는 말이다. 마가복음 10:49절에서 사람들이 바디매오에게 말하길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라고 말할 때 했던 말이다.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가까이 왔으니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안심하라는 말 다음에 하신 말씀은 “나다” 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4:41절에서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보고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 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마가는 대답한 것이다. 바람과 바다까지도 잔잔케 하시고 물위를 걸어 오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분이 누구신가?” 질문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곧 창세기 1:2절에 나오는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 하나님이시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세번째 하신 말씀은 “두려워 하지 말아라” 라는 말이다. 첫번째 하신 말씀인 안심하라 또는 용기를 내라는 말과 세번째 하신 말씀인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 사이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는 말이 끼워져 있다. 이는 그 하나님께서 떨어져 있을 때는 밤을 새워 기도하셨고 이제는 그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에 안심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픈 자녀를 위해 밤새 곁에서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다. 옆에서 기도하다가 잠에서 깨어 무서워하는 자녀를 진정시키며 엄마야! 엄마! 라고 말하며 안심시키는 모습과도 같다. 예수님은 세상 영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제자이 영적으로 심각하게 아픈 상태라는 것을 아시고 밤을 새워 기도하신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신 뒤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걸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나야! 나!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 그 하나님!” 이라 하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 힘들어 할 때도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탐욕을 품고 기대하며 간구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런 때에 우리 주님은 우리가 겪는 폭풍을 다 아시면서도 즉시 나서셔서 없애주시지는 않는다. 로마서 8:26절에도 보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고 했다. 우리가 힘들어 하던 그 때 우리 주님의 영인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해 기도하고 계셨다. 당장 어려움에서 건져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고 안심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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