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6:41-44

Dawn Word

마가복음 6:41-44

흥분한 제자들을 떠밀어 보내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6. 2.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6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6:41-44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는 흥분해 있던 제자들을 즉시 떠밀어 보내시고 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찬양하시고 빵을 쪼개시며 잔치의 시작을 알리셨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자 모든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부스러기를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차도록 거두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흥분한 제자들을 즉시 억지로 떠밀어 보내며 예수님은 홀로 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하시는 장면이다.

보통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과 물위를 걸으신 기적을 따로 나누어 해석한다. 하지만 Codex Sinaiticus 라는 유명한 4세기 사본은 마가복음 6:41-46절까지 한 단락으로 표시해 놓았다. 예수께서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주시는 모습부터 제자들을 보내고 기도하러 올라가신 모습까지 하나로 묶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4세기 필사자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신 기적을 하나로 연결해 놓은 것이다. Codex Sinaiticus 필사자는 어떻게 이 두 이야기를 하나로 보았을까? 광야에서 오천명을 먹이시는 예수님과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공통점이 무엇이길래 두 이야기를 하나로 보았을까?

만약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예수님께서 굶주린 오천명을 먹이신 것으로만 읽으면 물위를 걸으신 이야기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것은 굶주린 무리들의 배를 채워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능력을 가진 존재인지를 나타내신 것으로 이해해야 연결이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은 서로 연결이 된다.

물위를 걸으신 사건은 제자들과 헤어진 뒤 산 위에 올라가 기도하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예수께서 기도하신 뒤 제자들을 구출하러 가시기 위해 물위를 걸었다고만 이해하면 역시 두 이야기는 연결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제자들을 구해주셨다는 것이 이 부분의 핵심이 아니다. 이 부분의 핵심은 예수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두 기적 이야기는 모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야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Codex Sinaiticus 필사자는 이 두 사건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낸 사건들로 이해하고 있던 것이 분명한다. 우리도 역시 이 두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해야 한다. 이 두 사건의 중심은 모두 예수님이고 그 대상은 두 사건 다 모두 제자들이다. 따라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통해 가르치려는 대상은 무리들이 아니라 제자들이다. 물 위를 걸으신 사건도 역시 제자들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치려는 것이다.

Codex Sinaiticus의 필사자만 그렇게 연결해서 생각한 것이 아니다. 마가도 물위를 걸으신 사건을 오병이어의 기적과 분명히 연결하고 있다. 왜냐하면 원문은 “그리고 즉시” 라는 두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즉시” 라는 말은 남은 부스러기를 거둔 즉시 라는 뜻이다.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자마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배에 태워 건너편 벳세다로 먼저 가게 했다. 하지만 원문의 뜻은 “벳세다로” 가 아니고 벳세다 방향으로 라는 뜻이다. 또 “재촉하여” 라는 말은 강제로 떠밀어 보냈다는 뜻이다. 부스러기를 거두자마자 강제로 떠밀어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서 제자들을 강제로 떠밀어 보냈을까? 제자들은 자신들이 나누어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다. 또 그 부스러기들을 거두면서 그 기적을 다시 확인하고는 흥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백성들을 먹이신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6:15절에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리들 때문에 그렇게 제자들을 서둘러 보내신 것은 아니다. 제자들도 역시 무리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줄 다윗과 같은 강력한 왕으로 생각하고 흥분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출애굽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그 분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을 출세시켜 줄 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들을 흩어 보내시면서 동시에 제자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려고 그리고 즉시 제자들을 떠밀어 배에 타게 하고 먼저 떠나 보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염려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염려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신 것이다. 46절의 “그들과 헤어지신 뒤에” 라는 말을 개역은 “무리를 작별하신 후”라고 번역했지만 원문은 새번역처럼 “그들과 헤어지신 뒤”이다. 문맥으로 볼 때도 그들은 제자들이 분명하다.

45절에서 무리를 흩으시는 것은 본 동작이 아니라 제자들을 쫓아 보내면서 동시에 행하시던 상황을 설명한 것 뿐이다. 또 “헤어지신 뒤에” 라는 말은 잠시 작별인사를 한 것을 뜻한다. 이는 잠시 헤어져 있는 동안 잘 지내고 있으라는 인사 이다. 곧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인사이다. 마치 아이들만 남겨놓고 밭에 나가며 “금방올께” 라고 말하는 엄마처럼 제자들을 마음에 담고 잠시 헤어져 있는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와 작별하며 금방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를 물가에 두고 가는 엄마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자들을 따로 보내고 산으로 가신 것은 더 중요한 일을 위해서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이다. 산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실 때 머무셨던 곳이다. 예수님은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지금 출세의 기회인 줄 알고 기뻐하며 위기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려는 것이다.

얼마나 기도하셨을까?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제자들과 헤어진 때는 해질무렵이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을 바라보신 시각은 48절에 나와있는 “이른 새벽” 이다. 원어는 4시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로마시각으로 4시이다. 히브리 시각으로 밤은 세개로만 나뉘어져 있었다. 로마시각 4시는 오늘날 시각으로 환산하면 새벽 4-6시 사이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헤어진 시각이 오후 6시경 이라고 한다면 10시간 후에 제자들을 찾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자 마자 제자들을 보셨을 것이기에 최소한 8-9시간 많게는 10시간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기도하신 것이다. 그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데 가장 걱정이 되고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이제 제자들이다. 제자들이 자신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모든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헛수고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낼 때가 최대의 위기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삶으로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재수없는 소리만 하고 부정적인 것만 전한다며 욕을 먹게 된다. 예레미야를 비롯해서 많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그렇게 욕을 먹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욕을 먹게 된다. 모든 하는 일이 잘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을 때가 우리에게 최대의 위기이다. 우리 주님처럼 밤을 새워 기도해야 할 일이다.

마가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