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35-40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때 무리들이 영접했으니 이번에는 제자들이 무리들을 대접할 차례라며 무리들을 떼를 지어 예수님의 잔치 자리에 눕게 하셨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충전시켜 주시려고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가시자 달려 쫓아온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르쳐 주시는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무리를 먹이시는 기적을 통해 제자들을 충전시켜 주시려는 장면이다.
영적으로 굶주린 무리들에게 말씀으로 먹이다보니 날이 저물었다. 이제 무리들과 제자들은 영적으로는 가득 충전된 상태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여기는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다고 말했다. 빈들이란 말은 30절과 32절의 외딴 곳이란 말과 같이 광야 또는 사막이란 말이다. 무리들을 보내서 인근의 농가나 마을로 가서 음식을 사먹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제자들은 무리들을 걱정해서라기 보다는 자기들도 배가 고팠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가까운 곳에 가서 음식을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도 모르고 먹을 것이 없는 광야로 제자들을 데리고 오신 것이 아니다.
광야에서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먹이신 예수님은 이번에는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이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3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하셨다. 이는 6:8절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6: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접하는 자들에게 대접받으며 말씀을 전하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제자들을 통해 말씀과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제자들을 찾아왔으니 제자들이 대접할 차례라는 것이다.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갔을 때는 제자들이 손님이었지만 이 광야에서 몰려온 무리들은 제자들의 손님인 것이다. 너희가 나가서 선포하고 가르칠 때는 이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고 먹였기에 이번에는 무리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훈련장소인 광야에 왔으니 이번에는 너희들이 먹일 차례라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무리를 먹일만한 음식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나가서 기적을 행하면서 그 기적을 행하던 에너지가 다 방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제 기적을 행하던 그 에너지도 충전시켜 주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에 제자들도 참여하게 해서 앞으로 그 놀라운 능력을 저들도 계속 행할 수 있게 충전해 주시려는 것이다. 방전된 에너지가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여 충전되는 것이 진짜 휴식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제자들은 200데나리온을 가지고도 무리를 먹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직접 보았다. 자신들도 그 능력을 받아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말씀으로 가르쳤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능력을 행하시는데 동참했어야 한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사오정 노릇을 하고 있다. 더구나 6:8절에서 예수님은 돈을 갖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제자들은 돈으로 계산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자들의 대답은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이고 불순종이다.
이러한 불신앙은 구약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민수기 11:18-22절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실컷 먹게 하겠다고 하시자 모세는 11:2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 이러한 모세의 반항에 대해 하나님은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라고 답변을 하셨다. 모세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똑같이 사오정 노릇을 했던 것이다.
또 열왕기하 4:42절에 보면 한 사람이 보리떡 이십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엘리사에게 내놓다. 엘리사가 이것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자 엘리사의 사환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것을 백명에게 주겠나이까?”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이려 하는데 엘리사의 사환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똑같이 계산을 하면서 사오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기적을 행하느라 방전된 기적 에너지를 가득 충전시켜 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은 근거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55:1-2 에 나오는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라는 말은 하나님의 잔치를 의미한다. 이것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를 예언한 것이다. 이 잔치는 탐욕과 음란으로 채워져 있던 헤롯의 잔치와는 전혀 다른 잔치이다. 그런 세속적인 잔치로는 인간의 배고픔을 채워줄 수 없다. 예수님은 이사야에 예언된 하나님의 잔치를 기적을 통해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제자들의 엉뚱한 대답에 대해 예수님은 답변하지 않으셨다. 대신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 가서 보고 오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알아보니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었다. 예수님은 사오정 같은 제자들에게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셨다. 다섯개의 빵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뜻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억지스럽지만 그렇게 본다면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모세오경의 모세오경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또 모세오경을 생각나게 하는 다섯개의 빵으로 무리들을 먹이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9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리셨다. 예수님은 광야식당의 주인이 되셨고 제자들은 광야식당의 웨이터가 되었다. 그 명령은 모두 떼를 지어 푸른 풀밭에 앉게 하라 하신 것이다. 앉는다는 말은 잔치자리에서 트리클리니움에 기대어 눕는다는 뜻이다. 트리클리니움 대신 이제 푸른 풀밭에 눕이게 하신 것이다. 이는 시편 23편과 같이 푸른 초장에 눕이게 하신 것이고 예수님께서 목자이신 여호와가 된 것이다. “떼를 지어” 라는 말은 원래 잔치 자리에 함께 앉아 먹고 마시는 무리를 뜻하는 말이다. 원어에는 “잔치 자리에” 라는 말이 두번 노랫말처럼 반복된다. 푸른 풀밭에 있는 잔치자리마다 잔치자리마다 앉게 하라는 것이다.
무리들은 백명씩 쉰명씩 떼를 지어 앉았다 했다. 여기서 떼를 지어라는 말은 작은 밭에 농작물이나 화초따위를 줄지어 심어놓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백명씩 오십명씩 사각형으로 줄을 맞춰 앉았다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그림언어이다. 이 말도 역시 노랫말처럼 두 번 반복되어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무리들은 화단마다 화단마다 음식을 나누어주기 좋게 하기 위해 줄을 맞춰 앉게 한 것이다. 무리들은 이제 여호와께서 기르시는 농작물이고 화초인 것이다.
이는 또한 이스라엘의 군대조직과 같은 것이다.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군대였다. 백명과 오십명은 그러한 하나님의 군대의 단위이다. 이제 예수님은 몰려온 무리들을 잔치 자리에 앉게 하시면서 또한 주님의 군대를 삼으신 것이다. 제자들은 이들을 인도하는 지휘관들이 되어 새로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능력의 사역에 참여하여 돕게 함으로 회복시키시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나누어 주는 웨이터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누어 주는 웨이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포하고 우리가 놀라웁게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을 뿐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먹어보고 체험하게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