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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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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4-6

낙심하지 않고 계속 가르치신 예수님

2022. 5. 21.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6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6:4-6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에서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배척을 받으시고도 낙심하지 않게 제자들을 이끌고 여러 마을을 다시시며 가르치셨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의 회당에 가셔서 가르치시고 능력을 보여주셨을 때 사람들은 그 능력에 놀라면서도 사탄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걸려 넘어졌다. 저들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교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예언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며 그들의 불신에 대해 놀라시면서도 제자들을 데리고 여러 마을을 다니며 가르치시는 장면이다.

예전에 자신들과 함께 자란 목수의 아들이 전하는 가르침과 능력에 대해 고향 사람들은 기절할만큼 놀랐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4절에서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지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은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참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별볼일 없는 미천한 가문 출신이기에 그 가문에 비추어 판단하고 무시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1:46절에서 나다나엘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라고 말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 전체를 그렇게 무시했다. 갈릴리 중에서도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정말 인물이 날 수 없는 실개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실개천 중에서도 정말 보잘 것 작은 도랑같은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개천 사람들인 갈릴리 사람들 조차도 예수님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가문이나 재산이나 출신 학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업들은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을 선호한다. 오늘날 그렇게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교회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80년대 후반 서울의 왠만한 교회들은 신학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나온 목회자보다 SKY 학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나온 사람을 뽑는다는 말을 들었다. 대전의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조건이 자연과학 계통 PhD학위가 있으면서 신학 PhD 학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세상은 그래도 된다. 악한 세상은 그래도 된다. 하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

마가는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5절에서 "거기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예외는 몇몇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뿐이다. "할 수 없었다" 라는 말은 5:3절에서 "아무도 귀신들린 자를 묶을 수 없었다"는 말에서도 나왔다. 왜냐하면 귀신들린 자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6:5절에서도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저들의 반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에 대한 불신의 힘이 귀신들린 자 안에 있던 엄청난 숫자의 귀신들보다 더 강해서 예수님 조차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라사의 광인 안에 있던 엄청난 숫자의 귀신보다 강한 대적은 예수님에 대해 불신하던 나사렛 사람들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마술이나 기적을 행하시던 분이 아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항상 들려주신 하나님 말씀을 눈으로 보게 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은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시던 구속사역이었다. 이러한 구속사역은 받아들이는 자들이 거부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소용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억지로 회개하게 하고 죄사함의 권세를 행하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마음은 예수님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강한 영적 세력보다 더 강한 것은 바로 예수님을 거부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예수님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놀라셨다는 말은 신적 계시나 어떤 놀라운 기적을 만났을 때 쓰이는 말이다. 마가복음 5:20절에 보면 거라사 광인이 깨끗이 나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을 보고 데카폴리스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제자들을 데리고 오신 것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배척에 예수께서도 정말 깜짝 놀라신 것이다.

반대로 마태복음 8:10과 누가복음 7:9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이라며 깜짝 놀라셨다. 그런데 반대로 유대인이고 또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인 나사렛 사람들의 지독한 불신을 보시고 기적이라며 깜짝 놀라신 것이다. 이 말씀들을 보면 가장 큰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사탄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탄 마귀의 반대를 보여주신 뒤 6:10-11절에서 "영접하거든 거기서 머물고 영접하지 않거든 말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를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것은 믿을 줄 기대했던 사람들이 믿지 않고 거부할 때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6절 뒷부분을 보면 예수께서도 낙심하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물러서셔서 여러 마을들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고 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다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며 낙심하여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을 포기하기 쉽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크게 놀라시고도 낙심하지 않으시고 계속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거부를 당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전해야 한다.

특별히 "두루 돌아다니시며" 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의 본래 뜻은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 저곳을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9:5에서 바울은 자신도 게바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복음 전할 권리가 있다고 할 때도 같은 말을 썼다. 따라서 이 말은 예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받으시고도 제자들을 데리고 여러 마을을 찾아 다니시며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6:1절은 예수님께서 가실 때 제자들이 따라갔다는 말로 시작하고 6:6절도 제자들을 데리고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는 말로 끝이 난다. 따라서 오늘 마가복음 6:1-6절의 초점도 계속되는 제자훈련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려고 고향 나사렛에도 데리고 가신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가르치시려는 핵심은 믿을 줄 기대했던 사람들이 믿지 않고 완강히 거부해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두루 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낙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또다시 낙심하게 될까봐 두려워 예수님의 명령을 포기하는 것이다. 아무리 낙심을 해도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다니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것이 제자된 우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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