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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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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6:1-3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5. 20.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6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6:1-3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의 회당에 가셔서 가르치시고 능력을 보여주셨을 때 사람들은 그 능력에 놀라면서도 사탄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걸려 넘어졌다. 저들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교를 한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하던 회당장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고는 회당장의 딸을 살려주시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에서 빠져나오셔서 고향으로 가셨을 때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는 장면이다.

6:1절은 "그가 거기를 빠져나왔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신 다음에 소문이 퍼지기 전에 조용히 빠져나온 것이다. 거기서 빠져나와 가신 곳은 예수님의 고향이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앞서 가시고 제자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는 말은 제자훈련 중이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낸다. 제자들이 따라갔다는 말은 항상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가르치시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도 제자훈련 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읽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제자들을 파송하는 내용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제자들을 파송하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특별히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으셔서 고향으로 데리고 가신 것이다.

2절을 보면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은 역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여기서 가르치셨다는 말은 말로만 가르쳤다고 볼 수는 없다. 항상 가르치시고 기적을 보여주심으로 가르침을 마치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4장에서는 이사야서를 읽고 가르치셨다고 했지만 마가는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가의 초점은 예수께서 나사렛의 회당에서 놀라운 가르침을 주셨지만 거부당하셨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마가는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들으면서 놀랐다 했다. 놀랐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한 대 세게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다는 뜻이다. 완전히 압도되어 정신이 없을 만큼 놀랐다는 뜻이다(1:22, 6:2 7:37, 10:26, 11:18). 이런 놀라움은 좋은 의미의 놀라움이다. 나사렛의 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전율을 느끼며 놀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전율할 만큼 놀라운 가르침을 듣고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나사렛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여섯 가지 질문을 했다. 먼저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뿐 인데도 그 놀라운 능력을 듣고 보면서도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생각은 세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즉시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이다. 저들의 말투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분명 아닌데…" 라는 투이다. 둘째로 인간에게서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능력이라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가능성은 사탄이다. 나사렛 회당에 있었던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예수님의 능력이 사탄에게서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3:22절에 나온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도 예수님께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했다. 저들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던 학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귀신의 두목은 바로 사탄이다. 하지만 나사렛의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마음이 들었어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에게는 그런 결정을 내릴 권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도 분명히 예수님이 사탄의 권세로 능력을 행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번째는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이다. 이는 말로 들려주신 지혜 있는 말씀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라는 질문이다. 세번째는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라는 질문이다. 이것은 보여주신 말씀의 능력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라는 질문이다. 이는 가르침이나 기적 자체가 놀랍다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놀랍긴 하지만 그런 놀라운 능력이 어떻게 저런 하찮은 사람에게 주어졌을까? 라는 질문이다. 자신들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이기에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네번째는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라는 질문이다. 세번째 질문과 연결해서 하찮은 사람들이 갖는 직업인 목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나사렛과 같은 시골마을에서 목수란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고 농기구도 만들던 사람이다. 유대인들은 육체노동을 경히 여기지는 않았지만 절대로 존경받을 만한 직업은 아니다. 회당 안에 있던 나사렛의 율법학자들이 나름 존경 받는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을 무시하는 투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섯번째는 먼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 라고 질문했다. 보통 유대인들은 남자의 아들이라고 쓰지 여자의 아들이라고 쓰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그 당시 요셉은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비도 없는 자식이라고 멸시하는 투로 말한 것이다. 또 형제들의 이름이 계속 나온다. 여기에서 열거하는 형제들도 별스럽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섯번째는 별스럽지 않은 그의 가족들이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라고 질문한 것이다. 이는 모두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여섯개의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낸 다음 마지막 나온 말이 기가 막힌다. 새번역은 "달갑지 않게 여겼다" 라고 번역하고 난하 주에 "꺼려 하였다 또는 예수께 걸려 넘어졌다" 라고 써 놓았다. 원어는 "예수에게 걸려 넘어졌다" 는 뜻이다. 이는 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돌아서서 우상숭배에 빠질 때 쓰는 말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망치로 맞은 것처럼 엄청나게 놀랐고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능력을 받아 놀라운 능력을 행한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선 것이다. 그래서 마가는 이 단어를 사용해서 고향 사람들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돌아섰다고 기록한 것이다.

앞에서 2절에서 "놀랐다"는 말이 본래 한대 맞고 쓰러졌다 는 뜻이라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시 일어나서 몇 걸음 걷다가 예수라는 돌부리에 걸려 또 다시 넘어졌다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는 예수님에게 완전히 걸려 넘어졌다. 저들은 사탄이 준 교만한 마음과 예수님을 무시하는 선입견 때문에 하나님을 완전히 등지고 돌아선 것이다.

저들이 놀란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귀족들을 빼놓고는 글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개천에서 용나는 법도 없었다. 저들의 놀람은 "육신의 가족도 알고 별스럽지 않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도 알고 성장 배경도 다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라는 것이다. 그러한 저들의 선입견 때문에 저들은 놀라운 능력을 보고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냐는 질문은 6:14-15절에도 계속 이어진다. 사람들은 침례요한이 살아났다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옛 예언자중 한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들은 모두 고향사람들처럼 놀라운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만 보고 한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을 듣고 또 능력을 보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침례요한이나 엘리야라고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본래 모습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모두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해 하면서도 믿지는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자들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하나님 만이 행하실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셨는데도 모두가 믿지 않고 사탄의 능력으로 생각하며 멸시하고 냉대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 나사렛에 가신 목적은 분명하다. 제자들을 파송하기 전 제자들도 이렇게 거부를 당할 것이니 각오하고 나서라는 뜻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나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증거하고 변화된 우리 삶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고 거부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더욱 믿지 않고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낙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놀라운 가르침을 들려주시고 능력을 보여주셨을 때도 거부한 사람들이 우리도 역시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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