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5 예수께서 갈릴리 건너편 이방인의 지역에 도착하자 마자 귀신들려 무덤에 살며 그 힘이 가장 세기에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치고 있었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서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에 떠있는 배 위에서 벌떡 일어서셔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에게 명령하시니 순종하자 제자들은 이분이 누구시길래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시는가 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두려워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건너편 이방인의 땅에 도착해서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다.
1절에 보면 예수님과 그 일행들은 다음날 바다 건너편에 도착했다. 그곳은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이다. 원래는 2시간 정도면 건너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인데 풍랑으로 인해 밤새도록 떠 다닌 것이다. 참으로 기나긴 밤이었을 것이다. 배가 건너편 육지에 도착했을 때 정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1절에서 건너편 지역에 상륙할 때만 등장하고는 곧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데리고 다니시는 것이기에 제자들은 오늘 본문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새번역 난하주에 보면 일부 사본들에는 겔게사 가다라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대다수의 사본들은 분명히 거라사로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거라사가 데카폴리스지역의 중심되는 도시로 해변에서 37마일 떨어져 있어 걸어서 이틀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본 필사자들은 거리가 가까운 도시로 고쳐 쓴 것이다. 그러나 마가는 정확한 지명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낭독해주던 마가복음을 듣던 처음 청중들도 그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지역 이름을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던 이방지역이다. 그래서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거라사 라는 도시 이름을 쓴 것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거라사의 정확한 위치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세한 지명을 말해줘도 기억을 못한다. 단지 이방지역이라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이라고 애매모호한 말로 쓴 것이다.
2절은 예수께서 배에서 나오자 마자 즉시 무덤 사이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 무덤 사이에 살고 있다는 것은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이 사람은 잠시 무덤 사이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해서 무덤 사이에 머물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부정한 상태를 말한다.
이어서 이 사람의 비참한 상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절 뒷부분을 보면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라고 했다. 원어에는 이 부분에 부정어가 세번이나 나온다. "이제는 (no longer)" 이란 말도 부정어인데 전에는 묶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강해져서 이제는 아무도 묶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날이 갈수록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4절에는 과거에 이 사람을 묶었던 도구들이 나온다. 원어에는 쇠고랑이 먼저 나온다. 쇠고랑은 발을 묶어놓던 도구이고 쇠사슬은 팔을 묶었던 도구이다. 이 사람을 묶을 때에는 먼저 발에 쇠고랑을 채운 것이다.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려면 먼저 발을 묶은 다음에 쇠사슬로 손도 묶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끊어버릴 때는 팔을 묶었던 쇠사슬을 먼저 끊었다. 끊었다는 말은 옷을 찢는 것처럼 찢어버렸다는 것이다. 70인역 구약성서의 사사기 16:12절에서 삼손이 새 밧줄을 끊어버렸다는 말에서 쓰였던 말이다. 마치 옷을 찢듯 쇠사슬을 찢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발에 매인 쇠고랑은 손으로 돌 같은 것을 사용해서 찍어 부수었다는 것이다. 4절 끝에는 그래서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는 그 사람을 통제할 사람이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 사람이 그 지역에서 최고로 강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5절에 나타나 있다. 먼저 시간이다. 밤낮이라는 말은 모든 밤과 모든 낮이란 뜻으로 항상 그렇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어 이 사람이 활동하는 장소가 나온다. 그 장소는 무덤과 산이다. 무덤은 부정한 곳이고 산은 위험한 곳이다. 현대인들은 산을 휴식하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장소처럼 생각하지만 당시 사람들에 산은 야생동물의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 부정하고 위험한 곳에서 항상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하는 행동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자신을 찍어 자신의 몸을 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 사람 자신이 아니다. 그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이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피조물들의 축소판이고 대표로 등장한 것이다. 로마서 8:22절에 보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라고 했다. 오늘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부정하고 위험한 장소에서 소리지르며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며 살아간다. 자신들은 쾌락을 즐긴다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몸을 돌로 찍어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르는 것과도 같다.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는 우리 모두 이 사람과 똑 같은 상태에 있었다. 사탄의 하수인들인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 모두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