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39-41 예수께서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에 떠있는 배 위에서 벌떡 일어서셔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에게 명령하시니 순종하자 제자들은 이분이 누구시길래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시는가 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두려워했다.
이전 말씀에서 제자들은 거센 풍랑이 일어나 배를 덮치자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원망했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풍랑 가운데서도 평안히 주무시고 계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장면이다.
제자들이 깨우자 39절에서 예수께서는 일어나셨다. 개역은 "깨어"라고 의역을 했고 새번역은 "일어나" 라고 직역을 했다. 원어에서 이 말의 본래 "완전히"라는 말과 "일어났다"라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깨었다는 뜻이 아니고 또 누워있던 상태에서 몸만 일으켰다는 뜻도 아니다. 이는 예수께서 폭풍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서 완전히 벌떡 일어서시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두려워 떠는 제자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제자들은 두려워 떨며 배를 붙잡고 몸을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폭풍우로 인해 배에 물이 가득차고 배가 가라 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 배의 고물 위에서 벌떡 일어서신 장면이다.
벌떡 일어서신 예수님은 이어서 바람을 꾸짖으셨다. 바람에게는 마치 임금이 큰 죄를 지은 신하에게 책망을 하듯 심하게 책망하셨다는 뜻이다. 뭐라고 바람에게 책망하셨는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39절 끝부분에 보면 바람이 멈추었다 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바람을 불러놓고 왜 지금 부느냐고 심하게 책망을 하셨을 것이다.
또 이어서 바다에게는 두 가지를 명령하셨다. 두가지 명령은 접속사를 생략했다. 두가지 명령을 숨쉴 틈도 없이 빠르게 이어서 전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바람에게는 단순히 책망만 하셨는데 바다에게는 고요하고 잠잠하라고 말씀하셨다. 첫번째 명령인 고요하라는 말은 본래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어서 숨쉴 틈도 주지않고 또 명령하신 것은 입을 막으라는 것이다. 말하지 말라고 하자 바다는 즉시 말을 멈춘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아직 입은 열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바로 이어서 그 입까지도 완전히 막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말하지 말라는 명령은 현재형이지만 입을 막으라는 명령은 완료형이기에 완전히 입을 막아서 입김이나 숨소리조차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명령은 원래 더러운 영을 쫓아내실 때 쓰시던 말이다. 마가복음 1:25절을 보면 이 두가지 명령은 귀신을 쫓아낼 때 쓰는 말이다. 이처럼 자연을 다스리는 권세가 구약에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세이다. 구약에서 바다는 무질서와 악의 상징으로 쓰였다.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바다를 건너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데카폴리스 지역으로 가시려 하자 악한 영들이 그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에게 더러운 영을 쫓아낼 때 하시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바람과 바다 자체에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종하고 있던 악한 영들에게 꾸짖으시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렇게 책망하시고 명령하시자 바람은 즉시 멈추고 바다도 아주 고요해졌다. 바다가 아주 고요해졌다는 말은 바다 표면이 식탁 표면처럼 평평해졌다는 말이다. 한국말로 표현하면 거울같이 잔잔해졌다는 뜻이다. 이는 37절 앞부분과 대조되는 말이다. 이 두가지 대조되는 표현은 한 단어만 다르다.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대단한 폭풍이 되었다" 와 "대단한 고요함이 되고 있었다"가 된다. 이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대단한 폭풍이 대단한 고요함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를 뒤집어놓던 악한 영들까지도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순한 양처럼 완전히 복종한다는 것이다.
38절에서는 바람과 바다가 화가 난 상태였는데 예수님은 대단한 평온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화가 잔뜩 난 상태이고 바람과 바다는 대단히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바람과 바다는 예수님처럼 평온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며 숨을 죽이고 가만히 엎드려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시편 107편 28-29에서는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라고 했다. 시편 기록자는 바다의 광풍을 잔잔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찬송하고 있다. 출애굽기에서 바다를 가르고 건너게 하신 분도 하나님 이시다. 이사야 51:10절에서도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시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이니시니이까? "라고 했다. 이처럼 구약에서 바다를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도 복종하게 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예수님은 40절에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신다. 꾸짖으신 내용은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왜 무서워하느냐는 것이다. 바람과 폭풍을 두려워한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은 논리적이 아니다. 폭풍이 일어나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한 이유는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들려주시고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는데 왜 무서워하느냐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왜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다. 이미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자들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적어도 처음에 뽑힌 네 명의 제자들 만은 예수님을 믿고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저들은 예수께서 회당에서 권위있게 가르치시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시고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도 보았기 때문이다. 귀신들 조차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제자들도 당연히 알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중풍병자의 죄도 용서해 주셨다.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적들을 수도 없이 목격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했어야 했다. 5:36절에서 예수님은 회당장에게도 역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제자들도 이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고 믿기만 했어야 했다.
40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한 하나님의 가족들 즉 12제자가 아닌 모든 제자들이다. 41절의 그들도 역시 예수님과 함께했던 하나님의 가족들이다. 그들은 전에는 바람과 바다를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서로 다른 말이다. 40절에서 바람과 바다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서워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41절에서 두려워한다는 말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경외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들이 경외심을 갖고 한 질문은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이다. 물론 이 질문의 답을 자신들도 알고 있다.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말이다.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복음서가 큰 소리로 낭독되던 마가의 교회에서는 모두가 다 속으로 "하나님!" 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5:1-6:52절에서 여러가지 기적으로 말해준다. 그 중에서 결정적인 대답은 물위를 걸으신 후 6:50절에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 이다. 6:50절에서 "나다" 라고 번역된 말은 출애굽기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분이 누구신가?" 라는 질문에 마가는 6:50절에서 물위를 걸으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답하시는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단지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가진 랍비로 믿었기 때문에 두려워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두려워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을 훌륭한 스승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분이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고 천지 만물을 지금도 운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가 어떤 풍랑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은 환난 가운데서도 두려워 말아야 하는 것은 그분이 항상 우리 곁에서 평안히 주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