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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4:35-36

Dawn Word

마가복음 4:35-36

건너편으로 가자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5. 10.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4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4:35-36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시자 열 두 제자들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까지 여러 배에 나누어 타고 따라갔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로 가르치셨고 제자들에게는 따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다.

35절은 그날 저녁이 되었을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날 저녁은 앞에서 나온 큰 무리에게 비유로 가르치시고 제자들과 따로 있을 때 제자들에게 비유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신 날이다. 그 날 해가 질 무렵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셨다.

왜 건너가자 하셨을까? "무리들을 남겨두고" 라고 한 것으로 보아 무리들 때문에 많이 피곤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38절에 보면 폭풍 가운데서도 주무신 것으로 보아도 많이 피곤하셨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피곤하셨기 때문에 건너가자고 한 것은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가의 초점은 예수님이 피곤하셨다는데 있지 않다.

35절의 "저쪽으로" 라는 말이 마가복음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찾아보면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5:1절에서는 똑 같은 말이 "건너편"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예수님은 건너편으로 가셔서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또 5:21절에서는 건너편으로 건너가셔서 혈루증 앓던 여인을 치료하셨고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셨다. 또 6:45절에서는 제자들을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오셨다. 8:13절에서는 건너편으로 라는 말 다음에 오천명을 먹인 기적이 나온다.

마가복음에서 "건너편으로" 가자는 말 뒤에는 거의 대부분 예수님의 기적이 나왔다. 따라서 마가는 예수께서 건너편으로 가자는 말을 통해 기적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말로 들려주신 뒤에는 항상 그 말씀을 눈으로 보여주셨다. 건너편으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제자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다. 예수님과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은 그대로 노를 저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타고 가셨던 배는 어떤 배였을까? 1986년 갈릴리 북서쪽 해안의 진흙 속에서 1세기 배가 발굴되었다. 이 배는 고기잡이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데 쓰였을 것이다. 이 배의 길이는 27 피트이고 네 명이 노를 젓고 한명이 키를 잡았을 것이라 한다. 5명의 선원 이외에도 15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크기라고 한다. 이 배는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시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탔던 배도 이와 같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예수님이 이 정도 크기의 어선을 타셨다면 예수님과 12제자들이 배 한 척에 모두 탔을 것이다. 제자들은 어부들이었기에 따로 선원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직접 키를 잡고 노를 저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 갔다고 했다. 따라 갔다기 보다는 함께 갔다라고 해야 옳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가자고도 안 했는데 무리들이 그냥 따라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건너가자고 한 사람들은 열 두 제자들뿐 아니라 그 밖의 제자들도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함께 건너간 배는 복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 배 말고도 두대 이상이 함께 건너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는 최소한 셋 이상이다. 이 배들은 3:9절에 나온 것과 같은 아주 작은 배는 아니다. 3:9절의 배와 4:36절의 배는 서로 다른 단어이다. 만약 그 때 함께 건너갔던 배들이 모두 비슷한 크기의 배였다면 함께 건너간 제자들은 최소한 41명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한 척에 20명 정도 탈 수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뿌린 말씀의 씨앗이 최소한 세 개 이상의 배에 채울 만큼 열매를 맺었다는 뜻이다.

이들은 무리들 중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듣고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와서 말씀을 배우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가 기적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눈으로 보게 해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눈으로 보게 해서 평생 간직하고 씨앗을 뿌리는 자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도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을 때 따라간 경험을 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37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따라 건너편으로 가는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깨달아 알았다면 그 뜨거워진 가슴을 안고 예수님을 따라 건너편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배워서 깨달은 말씀을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버마 선교사였던 Adoniram Judson도 예수님께서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을 때 1813년 예수님과 함께 버마로 건너갔다. Judson 선교사 부부는 열대성 열병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어린 아들도 랭군에 도착한지 6개월만에 이 열병에 걸려 숨졌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Adoniram은 온 힘 다해 버마어를 익혀 성경을 버마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버마정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Adoniram은 영국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말할 수 없이 더러운 감옥에 21개월동안 수감되었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그의 아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간청한 결과 영국 정부의 중재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겪은 폭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825년 아내 낸시와 딸 마리아도 죽음을 당했다. 그는 많은 질병과 가족들의 죽는 고통을 겪는 가운데서도 23년만에 버마어 성경 번역을 마쳤다. Adoniram은 평생동안 폭풍 가운데 살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에 그는 폭풍 가운데서도 씨를 뿌릴 수 있었다.

우리도 예수께서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실 때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지만 귀로 들은 말씀을 눈으로 보고 삶으로 체험할 수 있는 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님 말씀을 따라 건너편으로 건너간 경험이 있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어떻게 보여주시고 체험하게 하셨는지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씨를 뿌릴 때 그렇게 우리가 눈으로 보고 삶으로 경험한 말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우리 주님처럼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씨를 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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