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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3:13-15

Dawn Word

마가복음 3:13-15

원하는 자들을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4. 26.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3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3:13-15 예수께서는 산에 올라가셔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셨는데 그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고 그들 중에 열 둘을 세우셔서 사도라 이름하셔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내보내서 말씀을 전파하고 능력도 행하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떠밀려와 쓰러졌고 귀신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의도적으로 그 발 아래에 쓰러졌지만 했지만 예수께서는 귀신들을 꾸지람하시고 무리들을 가르치신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제자를 부르시는 내용이다.

먼저 13절 앞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를 뽑으시기 위해 산에 오르셨다고 했다. 구약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던 특별한 장소이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또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은 바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겠다고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받지 않으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셨다. 이러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이다. 가난한 어부들도 부르셨고 부유한 어부들도 부르셨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도 부르셨다. 예수께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부르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각 계층의 사람들 중에서 아무나 부르신 것은 아니다. 많은 무리를 가르치시고 나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사람들을 고르시지 않으셨다. 세상 사람들 보기엔 그냥 돌멩이처럼 보이지만 다듬으면 보석이 될 사람들을 미리 아시고 고르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13절 뒷부분에 나오는 “그들이 예수께로 나왔다” 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나왔다” 라는 말은 원래 “멀리 떠나다” 라는 뜻이다. 이들은 군중들 가운데서 떠나 예수님이 계신 산으로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떠나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나 레위도 다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떠나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왔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에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순종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로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이미 산에 올라가 계셨다는 것이다. 치료받으러 바닷가로 몰려든 군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셔서 그들을 실망시키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신 것이다. 하지만 그 군중들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더 듣기를 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산에 계신 예수님께로 나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런 자들 중에 제자를 부르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아무나 제비 뽑듯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 중에 그 속을 다 아시고 선택하여 부르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제자가 되는 길이다.

14절에는 예수께서 열 둘을 세우셨다 했다. 세우셨다는 말은 원래 "만들다" 또는 "창조하다" 라는 뜻이다. 이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열 둘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열두명의 제자를 새로 창조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열두제자 라는 그룹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이제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열 두 제자가 된 것이다.

14절 뒷부분에는 이렇게 제자를 창조하시고 사도라고 이름까지 지으신 두가지 목적이 나온다. 그것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먼저 함께 있게 하시고 란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 함께 있는 것은 가족이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 본문 바로 뒤의 20-21절에는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나서는 모습이 나오는 것도 이제 육신의 가족은 예수님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35절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라고 하셨다. 이것으로 보아 함께 있게 하신다는 말은 예수님과 한 가족이라는 뜻이다.

가정은 배우는 장소이다.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있으면서 부모에게서 배운다. 한국에서도 어떤 사람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면 그 사람을 욕하지 않고 그를 잘못 가르친 부모를 욕한다. 특별히 유대인들의 가정은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장소이다. 이제 예수를 믿는 믿음의 가정은 가정이 믿음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지내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하나님의 가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예수님의 삶을 통해 보고 배우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들을 내보내어서"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함께 있는 것과 멀리 가는 것이 모순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말씀이 부활이후 제자들이 할 일을 말하고 있다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함께 있다는 말과 멀리 간다는 말은 모순되지 않다. 함께 지내는 가족도 때로는 특별히 할 일이 있을 때는 멀리 가기도 하는 것이다. 6:7-13에 보면 12제자를 둘씩 짝지어 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가르치신 후에 멀리 내보내서 실습을 시키기도 하셨다.

멀리 보내셔서 하게 하는 것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전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귀로 듣게 한다는 뜻이다. 또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갖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눈으로 보게 한다는 뜻이다. 1:39절에서 예수께서 직접 하셨던 일을 이제 제자들이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께 배워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게 하고 능력을 통해 눈으로도 보게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은 12배로 증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두가지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을 세상에 널리 나누어 주는 것이다. 열두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자들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열 둘은 상징적인 숫자이고 제자는 열 둘만이 아니었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우리도 역시 모여서 말씀을 배우는 것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있고 또 멀리 나가서 배운 말씀을 귀로 듣게 하고 그 능력을 눈으로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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