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5-6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고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분노하시며 병자를 치료해 주시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회당 밖으로 나가 예수를 죽일 모의를 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도를 모두 아시고 손 마른 사람을 가운데에 세워두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지 악을 행하는 것이 옳은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지 죽이는 것이 옳은지 질문하시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함정에 자신들이 빠진 것을 알고 입을 닫았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시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하는 장면이다.
보통 질문을 받은 사람이 대답을 못하면 질문한 사람이 답을 말해줘야 한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대답을 안하고 침묵했기에 예수께서 답을 해 주셔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예수님은 저들에게 답을 주시지 않으셨다. 그저 화가 나신 채로 바리새파 사람들을 둘러보시기만 하셨다. 저들은 자신들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했어야 했다. 그런데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자 예수님도 답을 주는 대신 분노한 채로 저들을 노려보며 둘러보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셨다.
마음이 굳어졌다 또는 완악하다는 말은 저들의 마음이 두껍고 딱딱한 가죽으로 뒤덮혀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이러한 상태를 책망하는 모습이 나온다. 신명기 10:16절에서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 했다. 또 예레미야 4:4절에서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마음가죽을 베라" 라고 했다. 바울도 로마서 2:29절에서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라고 했다. 모두 사람들의 마음에 딱딱하고 두꺼운 가죽이 덮여있어 예수께서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전하셔도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한 말이다. 예수께서 저들의 마음이 완악하게 굳어진 것을 탄식한 것도 이러한 구절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의 두꺼운 가죽을 베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생식기의 민감한 부분이 드러나게 되어 살짝만 스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처럼 마음의 두꺼운 가죽도 베어내어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선포하시고 가르치시며 보여주셨다. 만약 바리새파 사람들이 마음에 할례를 받았더라면 즉시 민감하게 반응하여 회개했어야 한다. 그런데 저들은 전혀 그 마음에 찔림을 받지 않고 예수님을 트집잡아 죽이려고만 하니 화가 나신 채로 둘러보시며 저들의 두꺼운 마음 가죽 때문에 슬퍼 탄식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저들에게 대답해 주는 대신에 탄식으로 대신하신 것이다.
탄식하신 후에 예수님은 가운데 있던 손 마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안식일 규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안식일에도 아이 낳는 것과 아이를 받아주는 것은 허용했다. 아이 낳는 것은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건져주는 것도 허용했다. 그러나 이 사람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은 다음날 와서 치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는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손을 쓰지 못하는 환자는 하루 하루가 고통이다. 안식일 규정을 만든 바리새파 사람들들이 만약 그런 상태에 있었다면 그런 사람들을 다음날 와서 치료받아도 된다고 하며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들은 질병에 얽매여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러한 고통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 손마른 자를 즉시 그 고통에서 풀어주어 편안히 안식할 수 있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
6절에 보면 마음에 두꺼운 가죽이 덮힌 바리새파 사람들은 즉시 회당에서 나갔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어야 할 저들이 엎드리는 대신 회당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그것도 살기를 띤 분노를 표시하며 나갔을 것이다. 사실 분노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처럼 분노를 표시한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의 행동은 예수님과 대조가 된다. 3:1절에서는 예수께서 회당으로 들어가셨다 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러 들어가신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회당의 주인을 자처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려고 회당에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저들은 나가서 헤롯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죽일 모의를 했다. 헤롯당이란 헤롯 안티파스 때 영향력있던 귀족들을 말한다. 원래 바리새파 사람들은 헤롯당 사람들을 멸시했고 적대적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저들의 정치적인 힘이 필요했기에 저들과 함께 결탁하여 죽일 모의를 시작한 것이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여 완악하다고 하시자 이들 안에 있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란 자아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이다. 바울이 로마서 2:29절에서 할례는 마음에 받으라고 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 속의 방어기제를 제거하라는 것을 남성의 생식기에 비유해서 알기 쉽게 전달한 것이다. 할례 받지 않은 생식기는 보호가 필요할 때는 생식기의 껍질로 민감한 부분을 덮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껍질을 벗겨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식기의 모습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와 같은 것이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지적하셨을 때 그들은 마음의 껍질을 그러한 죄로부터 분리시키고 자신들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반대로 예수께 분노를 표출하며 죽이려 한 것이 바로 이러한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2:14절에서 마음에 할례 받지 못한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마음에 껍질이 덮고 있어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자동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자신의 생각과 같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켜주는 말씀이 들려올 때는 은혜 받았다고 하고 자신의 죄를 지적하거나 책망하는 말씀이 들어오면 자신을 그러한 죄로부터 분리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마음에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러한 방어기제를 제거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신의 생각을 제거해 버리고 그 마음의 중심에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어떤 말씀이 들어오든 무조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마음을 덮고 있는 껍질을 제거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 죄를 지적하실 때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하나님 뜻에 순종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