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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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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3:3-4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하시는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4. 21.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3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3:3-4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도를 모두 아시고 손 마른 사람을 가운데에 세워두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지 악을 행하는 것이 옳은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지 죽이는 것이 옳은지 질문하시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함정에 자신들이 빠진 것을 알고 입을 닫았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안식일에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이 손 마른 사람을 세워놓고 예수께서 치료하시면 잡으려고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저들의 의도를 다 아시고 손 마른 사람을 불러내어 세워놓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시며 안식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 기적을 눈치채지 못하고 주목하지도 않으며 지나친다. 그 기적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설치한 덫을 예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계략과 마음 속까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손마른 사람이라는 미끼 뒤에 연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낚싯줄을 누가 잡고 있는지 예수님은 다 아셨다. 그래서 3절에서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손 마른 사람을 가운데로 나오게 하신 것은 이미 저들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4절에서는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질문하셨다. 사실 저들은 숨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함정을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내놓은 미끼를 불러서 회당 가운데에 세우고 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직접 질문을 하시자 저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자신들의 덫이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저들에게 예수님은 몰라서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질문은 예수님은 대적들의 공격에 방어하실 때 주로 쓰셨던 것이다. 2:8절에서는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라는 마음 속으로 한 질문에 2:9절에서 대답 대신 질문으로 방어하셨다. 또 금식에 관한 질문에도 2:19절에서 대답 대신 질문으로 방어하셨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왜 하느냐고 질문했을 때도 25-26절에서도 대답 대신 질문으로 방어하셨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자신을 공격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질문으로 방어를 하셨던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덫을 놓고 기다리던 것도 안식일에 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느냐고 공격하는 질문으로 파악하시고 질문으로 방어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두 쌍의 대조되는 말로 되어 있다. 첫번째 질문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선한 일이란 매인 자를 풀어주고 병든 자를 치료해주며 죽어가는 자를 살려주어 편안히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는 진정으로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고 또 예수께서 안식일에 하시던 일이다. 반대로 악한 일이란 사람들을 심판하고 벌주며 죽이기까지 하는 일들이다. 이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안식일에 하던 일들이다.

두번째 질문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이는 첫번째 질문과 똑 같은 것이다. 첫번째 질문에서 말한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말씀하신 것이다. 선한 일이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한 일이란 죽이는 것이다.

정답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바리새파 사람들도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질문에 정답을 말하면 자신들이 거꾸로 함정에 빠질 것이기에 대답하지 않고 잠잠히 있었던 것이다. 만약 선을 행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정답을 말하면 예수님은 그럼 왜 안식일에 치료하는 것을 정죄하느냐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신들이 안식일 법으로 사람들을 정죄하여 공동체에서 내쫓는 자신들이 악을 행하는 악한 자들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저들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자신들이 설치한 덫과 함정과 낚싯바늘에 자신들이 걸렸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침묵한 것이다.

침묵은 저들의 완악함의 표현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선한 일은 안식일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지 치료가 아니었다. 저들에게 선한 일이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벌을 주고 쫓아내는 것이었다. 저들에게는 안식일에 치료하는 것이 악한 것이다. 저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안식일의 규정이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에서 쉬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치료하시기 위해 안식일을 만드셨는데 저들은 정죄하고 쫓아내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악한 저들에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 때 제정하신 안식일의 의도를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인간에게 이익을 주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병마에 사로잡혀 고통을 겪고 있는 손마른 사람을 치료해주어 진정으로 편안히 안식할 수 있도록 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이 진정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안식할 수 있도록 하려는데 왜 그것을 모르느냐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행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말씀들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반영시켜 왜곡시킨 것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정죄하며 싸우다가 심하면 교회가 갈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19-25을 보면 히브리서 기록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고 영원한 지성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자고 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이미 앞장서서 가셨으니 그 길을 따라가자고 했다. 어떻게 따라가는가? 히브리서 기록자는 24절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따라가자고 했다.

정죄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용서하며 함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믿음을 갖고 있지만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며 함께 예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두가 예수님을 닮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그렇게 함께 예수님을 닮아가는 곳이기에 서로 불편하여 다투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먼저 깨닫고 닮아가는 사람이 아직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용납하고 이해하며 사랑으로 감싸서 그런 사람들도 치유하며 함께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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