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21-22 예수께서는 이기심으로 왜곡된 낡은 유대교의 틀 안에 예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말씀의 참된 가르침을 담을 수 없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경건함을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금식을 반대하시며 혼인 잔치에서 신랑을 빼앗기는 비유로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제자들은 진짜 슬픔으로 인해 금식하게 될 것이라 하셨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유대교라는 낡은 틀에 예수님의 가르침도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 틀을 벗어나자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러한 낡은 유대교의 틀 안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두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21-22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공격하던 사람들에게 두가지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다. 금식에 대한 질문이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교의 틀에 맞지 않는다는 공격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틀에 대한 두가지 비유로 대답하신 것이다. 이 두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새것은 옛것과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유대교의 낡은 틀 속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성경에 넣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발전시킨 유대교의 수많은 율법들의 틀 안에 넣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대교의 성전 휘장도 포도주 자루가 터진 것처럼 위아래로 찢어진 것이다.
첫번째 비유는 21절에 나오는 생베조각이 낡은 옷을 찢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베조각은 빨면 많이 줄어든다. 옛날에 손으로 직접 짠 베는 더욱 더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생베조각을 날은 곳에 대고 꿰메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생베조각이 오그라들면서 낡은 옷을 찢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보다 더 심하게 옷이 찢어지기 때문이다. 생베조각은 1:27절에 나온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고 낡은 옷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개발한 낡은 율법으로 된 유대교라는 틀이다.
당시 유대교는 이미 여기저기가 헤어진 옷과도 같았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발전시킨 유대교의 율법의 빈자리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덧붙여서 유대교를 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유대교는 수리가 불가능할 만큼 낡고 다 떨어져 못쓰게 된 옷과도 같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낡은 유대교를 수리해서 새것처럼 만들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메시야 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으로 유대교를 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대교라는 낡은 틀을 폐기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두번째 비유는 포도주를 담는 가죽부대와 포도주의 비유이다. 낡은 가죽부대는 이미 늘어날대로 늘어져 있기 때문에 신축성이 없다. 이런 신축성이 없는 낡은 가죽부대라도 이미 발효가 끝난 포도주를 넣으면 좀 더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낡은 가죽부대는 오래된 포도주를 넣는다 해도 머지않아 못쓰게 되는 것이다.
유대교가 이미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저들의 불순종과 거짓된 경건으로 찢어지기 일보직전의 가죽부대와 같다는 것이다. 구약성경 전체를 보아도 저들의 불순종과 거짓된 경건들의 역사가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런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면서 탄산가스(CO2)가 많이 발생해서 가죽부대를 터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와 같은 자신의 가르침을 낡은 유대교의 가죽부대에 넣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새 술인 예수님의 가르침만 넣지 않으면 유대교는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어차피 저들의 율법주의는 폐기처분 될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거짓된 경건이라는 틀은 메시야가 오셔서 회복시킬 하나님 나라를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 잘 사는 나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처럼 하나님 나라를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 잘 사는 나라로 바꾸어 놓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유럽의 기독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던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신들이 잘 사는 나라를 이루려고 했다. 미국이나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나라를 자신들이 잘 믿어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손들이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도 그러한 자기 중심적인 거짓 경건의 낡은 틀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틀 안에 예수님의 참된 사랑의 가르침을 담을 수 없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틀을 갖고 있어야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담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