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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2:16-17

Dawn Word

마가복음 2:16-17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4. 13.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2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2:16-17 예수께서 레위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고 율법학자들이 비난을 했지만 예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대답하셨다.

이전 말씀은 예수께서 레위의 집에 누워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함께 식사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제자가 되고 싶어 따라왔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한다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죄인을 부르러왔다고 대답하시는 내용이다.

1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자 비난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바리새파의 율법학자들이다. 당시 율법학자는 바리새파 뿐 아니라 사두개파나 에세네파 등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그 중 제일 엄격한 사람들은 바리새파의 율법학자들이다. 바리새파는 바벨론 포로 이후 하시딤이라 불리우던 사람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의 원인을 율법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보고 율법을 철저히 연구해서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율법에 나타난 정결법을 철저히 지켰던 사람들이다. 바리새파라는 말은 본래 분리주의자들이란 뜻이다. 정결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만 골라내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이러한 사람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이고 참 이스라엘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은 나쁜 것을 다 골라내서 버림으로 순수하고 정결한 이스라엘을 만들려 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세리와 죄인들은 저들이 부정하다며 쓰레기통에 버린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쓰레기통에서 그런 부정한 사람들을 꺼내셔서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이다.

16절에서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이 죄인들과 앉아있는 것을 보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14절에서 예수께서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레위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기셔서 건져내신 뒤 제자로 삼으신 것과 대조가 된다. 이 율법학자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비난만 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정결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불러서 제자를 삼았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수준이 있는 사람들만 불러서 제자를 삼는다면 우리는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보이신 본보기를 따라 사람들이 쓰레기로 여기는 사람들도 제자 삼아야 하는 것이다.

당시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것은 평화와 용서를 제안하는 것이다. 탕자가 살아있는 아버지께 유산을 달라한 것은 빨리 죽으라는 저주였다. 그런 원수같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 잔치를 베푼 것은 역시 그 아들과 평화와 용서를 제안한 것이다. 예수님은 레위가 베푼 잔치 자리에 다른 죄인들과 함께 앉은 것도 역시 그들을 불쌍히 여겨 평화와 용서를 제안한 것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더이상 그들과 원수가 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평화를 선포하시고 용서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이런 사람들과는 철저하게 분리시켰던 것이다. 분리시켰을 뿐 아니라 율법과 구두전승으로 높은 담을 쌓아서 이들이 절대로 그 담을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쫓아내고 넘어오지 못하게 담을 높이 쌓아 막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시던 때에 이들은 마음 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예수님께 직접 말하지 않고 제자들을 불러 비난했다. 물론 더러운 죄인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담대했다면 사람을 시켜 예수님을 불러서 직접 비난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을 불러 비난한 것은 저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저들이 예수님을 단지 죄인들 중의 한명으로 보았다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이상히 여길 이유가 없다. 저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다. 놀라운 기적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도 생겼을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들과 같이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불러 제자로 삼으실 것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자신들이 더럽다고 경멸하며 쫓아낸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니 당황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거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사역의 현상들을 잘 설명해 준다. 예수님은 절대로 세리와 죄인들이 옳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바리새파 사람들이 더 옳다고 생각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이 옳다고 생각해서 제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불의한 죄인들이지만 너그럽게 용서하신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을 계속 책망하시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저들이 죄인들만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책망하신 것이다.

17절은 이러한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의 비난하는 소리를 레위의 집 안에 계시던 예수께서 들으셨다고 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는 저들에게 다가와 비유로 대답을 하셨다. 그 비유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건강한 자들을 버리고 병든 자만 취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누가복음 15:3-7에 나오는 99마리 양을 가진 목자의 마음과도 같다. 목자는 99마리를 버리고 한마리를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99마리는 이미 자신과 함께 있으니 지키는 사람에게 맡기고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아나서겠다는 것이다. 또 누가복음 15:8-10에 나오는 여인이 9개의 동전을 버리고 잃어버린 한개의 동전을 찾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잃은 것 하나도 찾겠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99마리의 양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또 9개의 동전들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99마리의 양들과 9개의 동전들과 같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며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찾아다닌 사람들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들이다. 도덕이나 율법에 관해서는 부족한 것이 없던 사람들이다. 저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던 것 뿐이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보면 두 탕자가 나온다. 하나는 돌아온 탕자이고 하나는 집에 있던 탕자이다. 줄여 말하면 돌탕과 집탕이다. 이 비유에서 집탕의 문제점도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던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병든 자는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키고 건강한 자란 바리새파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진짜 의인이라 생각하신 것이 아니다. 저들 스스로가 의인이라 생각하기에 저들을 비꼬는 투로 의인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저들은 진짜 의인이 아니라 무늬만 의인이었다. 만약 저들이 진짜 의인이라면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런 율법주의자들 중에 최고의 율법주의자였던 바울도 로마서 3:10절에서 말하길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했다. 저들은 진짜 의인이 아니라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자신들만 못한 사람들은 모두 죄인으로 몰아서 쫓아내 버린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저들을 비꼬는 투로 저들이 비난하는 죄인들의 반대말인 의인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죄인들을 치료해서 의사로 만들 수 있는 분은 2:6절에 나온 율법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 뿐이다. 그렇다면 율법학자들의 마음 속의 생각까지 아시던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께서 이번에는 죄인들을 치료하셔서 의인들로 만드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들 가운데서 사시면서 죄인들을 말씀으로 치료하여 의로운 사람들로 만드는 역할을 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도 예수께서 쓰레기통에서 세리와 죄인들을 건져내신 것처럼 우리도 쓰레기통에서 건져내서 제자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제자훈련은 정말 고통스럽고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우리 주님의 제자들이 모두 다 그랬을 때 참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참고 인내하며 제자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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