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6-10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인자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리시려고 의도적으로 죄사함을 먼저 선포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이전말씀에서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한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리고 오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사함을 선포하셔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키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율법학자가 마음 속으로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인자가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겠다고 하시는 내용이다.
원문에는 6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4-5절에 등장한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진 네 사람과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들은 바로 율법학자들이다. 앞에서 나온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사랑해서 온 힘 다해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려 예수님을 만나게 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율법학자들은 그냥 거기에 가만히 앉아 있다. 그것도 마음 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하며 앉아있었다.
이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은 7절에 나온다. 이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한다며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사칭하며 하나님을 모독한 것은 곧 죽을 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학자들의 마음 속에 있던 생각일 뿐이다. 이제 율법학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갈등이 소리 없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원어에서 8절은 "그러자 즉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율법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자 즉시 예수께서 아셨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또는 중심으로 아셨다는 말은 원어에서 "그의 영으로" 라는 말이다. 마가는 예수께서 하나님만이 가지신 죄사함의 권세를 가진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기에 예수님의 영은 곧 성령님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즉시 아셨다는 것이다. 아셨다는 말은 완벽하게 다 아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omni-science 라고 하는데 전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이다. 예수님은 저들이 마음 속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며 죽여야 한다는 생각까지도 정확하게 다 아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저들이 생각하자 마자 즉시 알아채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6:15절에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라고 했다.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율법학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어찌하여 너희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고 책망하셨다. 마음 속 생각까지 들키자 저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지붕 뚜껑이 열렸을 때 그 안에 있던 율법학자들과 모든 사람들은 크게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율법학자들의 지붕 뚜껑이 열리고 그 속에 있는 생각까지 다 드러나자 정말 놀랐을 것이다.
놀라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던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 중에 선택하라고 문제를 내셨다. 그 문제는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쉽겠냐? 아니면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거라'고 말하는 것 쉽겠냐?" 라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네 죄가 용서받았다" 라고 말하면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기에 돌에 맞아 죽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거라" 라고 말하면 그냥 치료만 한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처형당하는 것이 쉽겠냐 아니면 그냥 놀라운 치유 사역을 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는 것이 쉽겠냐는 질문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훌륭한 치료자로 칭송받는 것을 마다하고 죽을 길을 택하겠는가? 예수께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다음 10절에 나온다.
10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9절과 연결이 된다.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이 있었으나 그걸 무릅쓰고 죄사함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목적을 먼저 쓴 이유는 죄사함의 권위를 분명하게 알리려는 것이다.
인자란 말은 마가복음에서 14번이 나온다. 문자적인 의미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러 오신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 라고 한 것이다.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저들의 마음 속의 생각까지도 다 아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