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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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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2:3-5

죄사함의 권세를 선포하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4. 7.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2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2:3-5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한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리고 오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사함을 선포하셔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키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불치병을 치료받거나 그 기적의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무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셨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네 사람이 데리고 온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3절을 원어의 순서대로 읽으면 훨씬 더 긴장감이 도는 극적인 순서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어에서 3절은 다짜고짜 "사람들이 왔다" 라는 말로 시작한 뒤 이어서 "한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오면서" 라고 추가로 설명한다. 보통 사람들도 뚫고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풍 병자를 데리고 갈 것인지 막막한 상황이다. 3절 마지막은 한술 더 떠서 그 중풍병자가 "네 사람에 의해 운반되어지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중풍병자는 한두 사람이 부축해서 데리고 갈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된 사람인 것이다. 설상가상이요 갈수록 태산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도 길을 비켜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새치기 하지말고 뒤로 가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병은 다르지만 모두가 심각한 불치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4절에서 이들은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예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걷어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구멍을 뚫고 뚫은 지붕의 구멍으로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끈에 매달아 내렸다.

이 장면은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의 집을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의 지붕의 구조를 알아야 이해가 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의 지붕은 평평했다. 비가 아주 적게 내리기 때문이다. 마가는 지붕을 뜯는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붕의 구조를 알 수 있다. 마가는 먼저 지붕을 걷어냈다 했다. 누가복음에 보면 기와를 벗겼다 했는데 이는 납작하고 거친 돌로 된 타일이다. 특별한 도구 없이도 쉽게 손으로 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다음 동작은 구멍을 뚫었다는 것이다. 이는 땅을 파 낼 때 쓰는 말이다. 납작한 돌 밑에는 갈대 같은 것으로 이엉을 엮어 놓고 진흙으로 발라 놓았을 것이다. 이것도 쉽게 파내고 걷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집 주인은 물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정말 놀랐을 것이다. 흙과 갈대 같은 것들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지붕 뜯는 일이 쉽다고 해도 문을 열었다가 닫는 것과 같은 일은 아니다. 예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믿음이라면 네 사람이 주목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마가는 이들을 비추던 카메라를 갑자기 확 돌려 예수께 초점을 맞추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운반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믿음이란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것을 굳게 믿은 것이다. 그 분께 나아가면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믿은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무 말도 안 하셨다는 것이다. 말씀대신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그것으로 끝이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바닥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이 중풍병자가 누워있던 자리는 당시 하층 서민들이 쓰던 것인데 둘둘 말아서 휴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행할 때는 여행가방으로 썼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이 중풍병자는 건강만 안 좋은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다.

이 불쌍한 사람을 보신 예수님은 이 사람을 부르셨다. 원어는 "이 사람아" 가 아니고 "아이" 라는 뜻이다. 이는 주로 친밀한 가족을 부를 때 쓰던 말이다. 5:34절의 "딸아" 라는 말과 같은 분위기의 말이다.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를 불쌍히 여기며 예수님의 가족으로 다정하게 부르고 계신 것이다. 네 사람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통한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 병자를 운반한 네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신다. 이 중풍병자를 이처럼 다정하게 부르셨다면 그 다음에는 "용기를 내라" 라고 위로 해 주시든지 아니면 "내가 치료해 주겠다" 라고 하셨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는 "네 죄가 용서받았다" 라며 죄사함을 선포하신다.

이것으로 예수님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데 관심이 있지 않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보면 기적을 기대하고 몰려온 수많은 무리들에게 엉뚱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 것과도 통한다. 무리들을 치료해 주는 것보다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나가게 하는 것이 더 소중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중풍병자에게도 치료보다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를 치료하시는 것보다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존재로 회복시켜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풍병자는 사람들에게 부정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성전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큰 믿음을 가지고 자신들의 앞에 있는 장애물도 극복하며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간 이들의 믿음이 돋보인다. 이들 네 사람은 이 중풍병자를 불쌍히 여겼을 것이다. 불쌍히 여겼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이들의 정성과 사랑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중풍병자를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죄사함을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이 중풍병자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존재로 회복시키신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정말 불쌍한 사람들은 죄사함의 권세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오늘 말씀은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최고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아무도 그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는 이 기적을 통해 예수께서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라고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죄사함의 권세를 알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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