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2-13 예수께서 성령님에 의해 광야로 내쫓겨 사탄과 들짐승들의 방해를 받으시면서도 40일 동안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하나님과 교제를 하셨다.
이전 말씀은 오신다고 하신 능력 많으신 예수께서 오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이 예수께 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도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동안 시험을 받으신 내용이다.
12절도 10절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즉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성령님의 활동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10절은 예수께서 물위로 나오는 즉시 성령께서 하늘 천막을 가르고 예수께 임하셨고 또 음성으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고 들려 주신 것이다. 12절도 역시 “그리고 즉시 내 쫓았다” 라고 성령님의 활동을 묘사한다. 한글 성경들은 내쫓았다는 말을 부드럽게 번역했지만 이는 마가의 의도를 놓치게 만드는 것이다. 마가는 종으로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기 위해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내 쫓았다” 라고 기록한 것이다. 내쫓았다는 말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싫다고 거부하고 싶지만 억지로 자신의 뜻을 억누르고 순종했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13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 계셨다고 했다. 40이라는 숫자는 창세기의 홍수 심판의 기간이고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말씀을 듣기 위해 머문 기간이다. 열왕기상에서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지켜주신 기간이다. 따라서 40이라는 숫자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셨다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계셨다는 것도 역시 견디기 힘든 환경에서 고난을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다는 것이 초점이다. 그래서 마가는 사단에게 시험을 받고 들짐승들과 함께 계셨지만 천사들이 옆에서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다고 한 것이다.
13절에서는 세 단어가 나란히 비교되며 병치되어있다. 이 세 단어는 모두 과거의 일정시점까지 그 동작이 계속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마치 뉴올리언즈에서 사순절 전에 벌어지는 마디그라 퍼레이드의 행렬과도 같다. 구경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그 행렬은 잠깐 지나가는 것 같지만 그 퍼레이드의 행렬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하여 앞으로도 일정시간 동안 계속 지속되는 것이다. 마가는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계셨던 상황을 한동안 계속 상영되는 동영상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표현은 “계셨다” 이다. 한글 번역은 마치 시험을 받으셨다가 주된 동작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어는 “계속 계셨다” 가 중심동작이다. 예수께서는 40일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40일동안 광야에서 계속 머무셨다는 것이다. 그 때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은 사탄에게 방해를 받으셨다는 뜻이다. 마태와 누가는 그리스어인 “디아볼로스” 라는 말을 썼는데 마가는 셈어인 “사탄” 이란 말을 썼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방해하던 그 사탄이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행하실 때 방해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두번째 표현인 들짐승과 함께 계셨다는 말도 역시 들짐승들의 방해를 받으며 광야에서 계속 계셨다는 뜻이다. 세번째 나란히 놓인 표현은 “천사들이 계속해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천사들이 계속 예수께 공급해 주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사탄과 들짐승들의 방해를 계속 받았지만 천사들이 공급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드시며 광야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분의 핵심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40일동안 계속 계셨다는 것이다. 이 사십일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시작할 공생애를 차분히 준비하셨을 것이다.
우리 역시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은 고난을 겪을 때가 은혜를 받을 때이다. 세상의 풍요로운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바로 하나님과 말씀으로 깊은 교제를 나눌 때이다. 하던 일에 실패하고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것 같은 고난의 때가 바로 우리 예수님처럼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기회이다. 그 때 우리도 사탄의 방해와 주변 환경의 위협을 받겠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