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3-10 예수가 사형판결을 받고 로마 총독에게 넘겨지는 것을 본 유다는 후회를 하고 그 돈을 대제사장들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거부당하자 성전에 던져넣고 자결을 했다.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인데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깨버리신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새벽에 모여 예수께 대해 사형판결을 내리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죽여달라고 넘겨주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다가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자살한 내용이다.
3절은 예수를 넘겨준 유다가 예수의 정죄됨을 보았다고 했다. 유다는 예수를 잡은 무리들과 함께 대제사장의 관저로 가서 재판의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지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유다는 스스로 뉘우쳐자신이 받은 은 삼십을 장로들에게 갖다 주었다.
4절에서 유다는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아넘김으로 죄를 지었다고 했다. 이는 신명기 27:25절에서도 나온 표현이다.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유다는 자신이 저주를 받을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를 한 것이다. 유다의 이러한 표현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도 죄의식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무죄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한 죄책감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다. 새번역은 "그것은 그대의 문제요" 라고 했고 개역은 "네가 당하라"고 했다. 원어는 "네가 볼 것이다" 라는 뜻이다. 24절에서 빌라도도 자신은 상관없다고 손을 씻으며 "너희들이 볼 것이다" 라고 같은 말로 죄를 유대인들에게 떠 넘겼다. 따라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유다에게 떠넘긴 것이다.
5절에서 유다는 그 은을 성전에 던져 넣었다. 아마도 제사장들만 들어가는 곳으로 던져 넣었을 것이다. 그뒤 그는 가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사도행전 1:18절은 이러한 유다의 죽음을 자살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기록했다.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관점에서 스승을 배반한 자가 자살한 것은 명예로운 행동이었다. 유다는 아마도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죄값을 치르고 자신의 불명예를 회복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가 스승을 배반한 것이나 유다가 스승을 배반한 것의 차이는 없다. 차이는 베드로는 나중에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나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이고 유다는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거부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기회를 스스로 버린 것 뿐이다.
6-7절에서 대제사장들은 그 은을 취하며 말하기를 이것을 성전 금고에 넣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했다. 성전 금고란 원어에서 "고르반"이다. 마가복음 7:11절에 나온 말과 같은 말에서 온 말이다. 그 뜻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돈은 더럽혀진 돈이기에 부정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의논한 후에 토기장이의 받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준 돈이 죄로 오염이 되었다며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고 한 자체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한 것이다. 8절에서 그 밭은 마태복음이 기록되던 당시까지도 피밭으로 불리웠다는 것이다.
9-10절에서 마태는 이것이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했다.
토기장이의 비유는 예레미야 18:1-12절에 나온다. 그러나 은 삼십을 토기장이에게 던졌다는 말은 스가랴 11:13절에 나온 내용이다. 마태는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와 같이 잘못된 그릇은 깨버리시는 분이라는 뜻이로 예레미야 18:1-12절을 염두에 두고 그 백성들을 심판하신다는 뜻을 전하려 했을 것이다. 스가랴 11:13절도 역시 하나님의 몸값을 노예의 몸값으로 던져주는 악한 백성들과 완전히 결별하시고 갈라선다는 내용이다. 스가랴가 전한 말씀의 배경은 예레미야 18:1-12절인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를 판 유다가 저주를 받아 죽는 것으로 읽기 쉽다. 그러나 마태는 자신들이 지은 죄를 유다에게 떠넘긴 유대교 지도자들의 죄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가랴 11:13절을 인용하면서도 그 배경에 해당하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보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백성들을 잘못된 그릇을 깨듯 깨버리신다는 경고를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진짜 범인들은 유다가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인 것이다.
함께 죄를 짓고도 자신들의 죄는 보지 못하고 남에게 죄를 떠 넘기는 자가 진짜 죄인이다. 교회 안의 모든 분쟁들은 함께 죄를 짓고 그 죄를 남에게 떠넘기는데서 온다. 하나님의 사랑은 저주하며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도 용서하시는 사랑이다. 유다도 자살하지 않았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복음 전하는 자로 삼으셨을 것이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신 우리 주님을 본받아 서로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하자. 그 이유는 우리가 더 큰 죄를 용서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