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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42:18-25

Dawn Word

이사야 42:18-25

귀를 열고 눈을 뜨길 원하시는 하나님

2018. 11. 6.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42장 강해 설교

이사야 42:18-25 귀머거리와 소경인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 주시는 것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살 길이다.

하: 귀를 열고 눈을 뜨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말씀과 삶을 통해 들려주시고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우리를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내용이 나왔었다. 오늘 말씀은 그렇게 구원하시고 인도하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말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고통을 당할 때 어째서 하나님은 그렇게도 자신들의 부르짖음을 듣지도 못하고 그렇게 자신들의 고통을 보지도 못하느냐고 불평을 한 것이다. 혹시 하나님이 귀머거리가 아니고 소경이 아니냐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소경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반박하는 내용이다.

18-19절은 "너희 귀가 먹은 자들아 들어라! 너희 눈이 먼 자들아 환하게 보아라. 누가 눈이 먼 자냐? 나의 종이 아니냐! 누가 귀가 먹은 자냐" 내가 보낸 나의 사자가 아니냐!" 라고 말한다. 7절에서 주님의 종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하고 갇힌 자를 풀어 준다고 했다. 눈이 먼 사람이 눈먼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가? 함께 감옥에 갇힌 자가 다른 갇힌 자들을 풀어 줄 수 있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7절에서 말한 주님의 종은 메시야를 가리키지만 19절에서 말하는 주님의 종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에 하나님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인 것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이 바로 눈이 멀고 귀가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절은 그는 많은 것을 보았으나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귀가 열려 있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귀가 먹고 눈이 멀어서 자기 백성들의 외침을 듣지도 못하고 그 고통을 보지도 못한다고 원망을 했지만 하나님은 반대로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 백성이 귀가 먹고 눈이 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21-25절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 주셨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1절은 주님은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율법과 교훈을 높이셨다고 했다. 새번역은 율법과 교훈이라고 번역했고 개역은 교훈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율법이다. 원어는 율법을 크고 높게 만들기를 원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어떻게 크게 되고 높게 되는가? 백성들이 율법을 크고 귀하게 여겨 율법 앞에 낮게 엎드려서 순종하면 된다.

22절은 그러나 그의 백성은 반대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의 백성은 약탈과 노략을 당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구덩이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약탈을 당했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혀 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다시 낚아 채어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노략을 당했다는 것은 모든 물건을 빼앗아 가고 옷까지 다 벗겨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되돌려 주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23절은 "너희 가운데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라고 했다. 이렇게 잡혀가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런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라고 했기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또 "누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주의하여 듣겠느냐?"

라고 질문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말씀해 주셨는데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4절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잡혀가고 다 빼앗기도록 내버려 두신 분은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주님께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주님의 길은 율법이 가르쳐 주는 길인데도 그 백성은 그 길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그 법에 복종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25절은 그래서 "주님께서 불타는 진노와 참혹한 전화를 이스라엘 위에 쏟으셨다" 라는 것이다. 불타는 진노 란 분노의 콧김이란 뜻이다. 참혹한 전화란 전쟁의 맹렬함이란 뜻이다. 이스라엘이 적군들에게 공격을 받아 죽고 도시는 불이 타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뜨거운 콧김을 쏟아 부으셔서 모두 불타버리는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래서 "사방에서 불이 야곱을 덮었으나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고" 라고 했다. 하나님의 알지 못했다는 말은 보고 들음을 통해서 이해를 했어야 했는데 이해를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직접 태운 것이 아니고 불이 사방에서 포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직접 태우는 것이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했다는 말은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무지함이다. 하나님이 귀가 먹고 눈이 멀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귀가 먹고 눈이 멀은 것이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과 우리 삶의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 경고하실 때 알아야 한다. 불이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면 그 때라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불이 다

태운 뒤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우리도 오늘 말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크고 높게 섬기면 안된다. 우리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크고 높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납작 엎드려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만이 살 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경고하여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그 말씀이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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