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20-25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의 자리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제자들 중에 자신을 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 안에 어떤 사람에게 가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심으로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려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월절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을 팔아 넘길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20절은 저녁 때가 되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고 했다. 유월절 식사는 닛산월 15일이 시작되는 목요일 밤에 먹는 것이다. 21절은 그들이 먹고 있을 때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공식을 사용하여 말씀하셨다. 그것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넘길 것이라는 것이다.
22절에서 제자들이 대단히 슬퍼하며 각자가 한 사람씩 예수께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은 "저는 아니지요? 주님!" 이라는 것이다. "저는 아니지요?" 라는 질문은 아니라는 대답을 미리 기대하고 말하는 질문이다. 더구나 "주님"이라는 호칭은 자신들이 참된 제자들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25절에서 유다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지 않고 "랍비" 즉 선생님으로 부른 것과 대조되는 호칭이다.
23절에서 예수께서는 대답하시길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이미 담근 자가 나를 넘길 것이다" 라고 하셨다. 어떤 이는 손을 담갔다는 말을 오늘날처럼 각자 자기 접시에 음식을 담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릇 안에 음식을 넣어두고 모두가 팔을 뻗어 집어먹는 것이 관습이라고 한다. 개역도 "손을 넣는"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새번역처럼 "손을 담근"이라는 뜻이다. 담근다는 말은 액체에 담그는 장면이기에 단순히 큰 그릇 하나에 담긴 음식을 모두가 집어먹는 장면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말은 식사할 때 빵을 소스가 담긴 그릇에 담그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이 말은 또한 잔과 함께 축복의 말을 한 뒤에 전채(appetizer)를 먹는 과정일 수 있다. 상추나 푸른 야채를 소스에 담그는 장면으로 보는 것이다. 이 말은 유월절에 먹는 쓴나물의 쓴 맛을 줄이기 위해 견과류와 야채와 식초를 섞어 만든 소스에 담그는 것일 것이다.
미쉬나는 유월절에 먹는 쓴나물 다섯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정확히 번역하기 어렵지만 상추와 치커리와 에리지움이라는 미나리과 풀과 야생당근과 엉겅퀴이다. 모두 우리가 먹는 고들빼기나 민들레나 씀바귀 같은 쓴 맛을 내는 풀들일 것이다. 이러한 쓴나물은 이집트에서 쓴 맛과 같은 노예생활을 의미한다. 손을 담갔다는 말은 그러한 쓴나물들을 소스에 담갔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거형으로 되어 있기에 이미 예수님과 동시에 야채를 소스에 담갔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미 예수님과 동시에 소스에 손을 담갔기에 함께 식사하는 제자들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24절에서 예수께서는 인자는 자기에 관해 성경에 기록된대로 떠나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자를 넘기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데 더 좋았을 뻔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에 따라 그 죄를 사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도 유다에게 예수를 배신하라고 압력을 넣지 않았고 그것은 전적으로 유다의 선택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선택의 결과는 유다 자신이 겪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길 것을 미리 아신 것이지 유다의 마음을 조종해서 예수를 팔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25절은 예수를 넘길 자 유다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아니지요? 랍비여!" 라고 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주여!"라고 불렀지만 유다만 "랍비여!" 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유다는 예수가 참된 메시야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훌륭한 스승으로만 여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다" 라고 대답하셨다. 이는 "네가 그렇게 말했다"라는 뜻으로 유다가 단정적으로 예수를 팔 자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이는 말한 사람 자신이 안다는 뜻이다.
오늘날도 예수를 훌륭한 스승으로 생각하며 가르치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 기독교도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착하고 바르게 살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믿고 가르치는 신학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던 사회운동가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서에서 그런 내용만이 진짜 예수의 모습이고 나머지는 제자들이 꾸며낸 신화로 믿는다. 그러나 영광의 몸을 입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장차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믿는 자들도 영원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