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6-13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고하셨는데도 세상적인 야망으로 가득차 있던 남자 제자들은 흘려들었기에 향유를 부은 여인을 책망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이 여인이 행한 일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칭찬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을 때 유대교 지도자들은 죄없는 예수를 거짓된 죄목으로 잡아 죽이려고 모여 의논하면서도 순례자들이 많이 모여든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에는 예수께 값비싼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여인이 나온다.
6절은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라고 말하며 예수께서 계신 장소를 말한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올리브산에 있던 마을이다. 나병환자 시몬은 현재 나병을 앓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치료를 받고 깨끗함이 증명된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며 살 수 없기 때문이다.
7절에서는 한 여자가 예수께 나아왔다. 나아왔다는 말을 이 여자가 예수께 가까이 다가오던 장면을 나타낸 말이기에 이 여인은 그 집안 사람도 아니고 초대를 받은 손님도 아닐 것이다. 그 여인은 매우 값비싼 향유가 든 옥합 하나를 가지고 왔다. 이 향유는 왕이나 대제사장에게 붓는 것이다. 그 머리에 흘러내리는 향유는 쏟아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한다.
그 여인은 이렇게 값이 비싸고 귀한 향유를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 향유는 일년 품삯 정도에 해당하는 매우 값진 것이다. 또 식사하신다는 말은 기대어 누워계신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특별한 잔치에 귀한 손님으로 초대를 받은 장면이다. 이 여인은 메시야이신 예수께 이렇게 값진 향유를 다 쏟아 부은 것이다.
8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분노를 하며 "어째서 이것을 낭비하느냐?" 라고 말했다. 낭비한다는 말은 망가뜨리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향유는 목이 긴 작은 용기에 밀봉되어 있다. 쓸 때는 그 목을 부러뜨려야 하는 것이기에 망가뜨린다는 말을 쓴 것이다. 그렇게 한번 부러뜨려 개봉을 하면 한 번에 다 쏟아야 하는 것이다.
9절에서 제자들은 이어서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쏟아 부으며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여인과 그것을 아까워하며 예수님의 가치를 낮게 보는 제자들이 대조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어지는 14-16절에서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유다는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넘기는 장면도 나온다. 그 향유를 아까워하던 제자들이나 예수의 가치를 은 삼십과 바꾸는 유다나 그 마음에는 큰 차이가 없다.
10절에서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새번역에서는 "보시고"라고 번역했지만 이 말은 개역처럼 "아시고" 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마음도 다 아시고 또 제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마음까지 다 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인에게 고통을 주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이 여자는 예수께 좋은 일을 했다고 하셨다. 좋은 일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의로운 일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부은 것이 왜 선한 일인지 11절에서 설명하신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지만 너희는 항상 나를 갖고 있지는 못한다고 하셨다. 이 여인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여제자일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계속 예고 했는데도 남자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항상 자신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2절에서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죽으실 것을 이미 반복해서 예고하셨는데도 제자들은 못알아 듣고 있는데 이 여자는 깨닫고 알아서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을 예고하신 것을 흘려듣던 제자들과 잘 듣고 값진 것을 깨뜨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여인이 대조가 되는 것이다.
13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공식으로 진리를 말씀하신다.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전해져서 기억될 것이라고 하신다. 기억된다는 말은 온 세상의 모든 교회가 이 여자가 행한 놀라운 일을 기억하고 칭송한다는 뜻일 것이다.
모든 남자 제자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간직한 채 예수를 따라다녔다.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다윗과 같은 왕이 되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시면 자신들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을 기대하고 따라다녔다. 이러한 야망이 그 마음에 가득 차 있었기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반복해서 예고하셨는데도 그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들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남자 제자들과는 달리 그 마음이 비어있었기에 그대로 듣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한 것이다.
우리도 역시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야망을 비우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3절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 마음에도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성취할 일들이 가득 차 있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욕심과 생각을 먼저 비워야 한다. 그래야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 마음 안에 간직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도 이 여인처럼 예수께서 칭찬하시는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