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34-40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아 재판하시는 왕께서는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복있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이러한 의인들은 주님을 위해 가장 낮은 자가 된 자들을 영접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에 휩싸여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에 모든 민족을 부르신 뒤 양과 염소를 가르듯 둘로 갈라서 의인은 상을 받는 자리에 두시고 악인들은 벌을 내릴 자리에 두실 것이라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오른편에 있는 양과 같은 사람들과의 대화이다.
34절은 "그 때에 말씀하실 것이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때는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민족을 심판대 앞에 세우시고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세우실 때 말씀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31절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소개도 없이 자신을 "왕"이라고 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법권이 분리가 되어있는 오늘날과 달리 고대에는 왕이 재판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1절에서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라는 말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이미 왕으로 소개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 모든 민족을 재판하시는 재판관인 왕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것이다.
모든 민족을 재판하실 왕이신 예수께서는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 하신 말씀은 "오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사람들이여!" 라고 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뜻이다. 대부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자라는 말을 땅을 상속을 받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이는 의인들이 마침내 종말론적 왕국을 완전히 상속 받는 것이다. 이미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그분의 왕국 안에 그들이 참여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종말론적 왕국이 완전히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어서 "상속을 받으라" 라고 말한 것이다. 이들이 상속을 받을 복은 바로 창세 때부터 이미 완전히 준비된 왕국이다. 따라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온 세상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미 계획하시고 완전히 완성해 놓으신 왕국이다. 마지막 때에 재판관으로 오시는 우리의 왕은 그 나라가 오른편에 있는 양들의 소유라고 선포하신다는 것이다.
35절은 이들이 왜 그렇게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말한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라고 말씀하셨다. 단순히 먹고 마실 것을 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귀한 손님으로 자신들의 집에 모셔들였다는 것이다. 나그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잠을 잘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이 땅에 나그네로 오신 예수께 가장 시급한 세가지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36절에서는 또 "헐벗었을 때에 나를 입혀 주었고 내가 아팠을 때 나를 찾아와 주었고 내가 옥에 갇혔을 때에 내게 왔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는 이러한 나그네를 오랜 기간 지속해서 돌보는 모습이다. 오랫동안 있다보니 옷이 다 떨어져 헐벗게 되었고 또 몸도 아프게 된 것이다. 잡혀서 감옥에도 갇히게 된 것이다. 이 양들은 일시적으로 나그네에게 먹고 마시게 하고 잠자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돌보았다는 뜻이다.
37-39절은 재판관이신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보좌의 오른편에 있던 의인들이 질문한 것이다. 그 질문은 앞에서 나온 긴급한 세가지인 먹고 마시고 영접하는 것과 또 장기간 해야 할 세가지인 입을 것을 드리고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 돌본 것이다. 자신들은 그런 일을 주님께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40절은 이에 대한 왕이신 예수님의 답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공식으로 말씀하신다. 그 진리는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만큼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라는 것이다. "내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 자" 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가장 작은 자" 라는 말은 지극히 높은 왕의 반대말이다. 지극히 높으신 영원한 왕께서 낮고 낮은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가장 낮은 신분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종의 모습으로 섬기시던 때 예수님도 "가장 작은 자"였다. 그러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것의 정반대를 나타내는 말이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의 의미이다.
"가장 작은 자"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네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모든 인류라는 뜻이라는 해석이다. 둘째 모든 크리스천들이라는 해석이다. 셋째 크리스천 선교사들이라는 해석이다. 넷째 유대인 크리스천이라는 해석이다. 네번째 해석은 "형제들"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제외되어야 한다.
만약 첫번째 해석인 "모든 인류"라고 한다면 온 세상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진보적인 신학을 따르는 교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교회의 사역을 집중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2:50절에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라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형제들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 해석인 모든 크리스천이나 셋째 해석인 크리스천 선교사들만 남는다. 그런데 마태복음 18:4절에 보면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가장 작은 자"란 크리스천 중에서 스스로 자기를 낮춘 겸손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모든 크리스천이 아니라 우리 주님처럼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선 사람들이 바로 "가장 작은 자" 라는 말의 의미이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잠잘 곳도 없는데다가 옷도 낡아 떨어지고 병이들고 마침내 감옥에 갇히는 것은 바울과 같은 전도자들의 모습이다. 특별히 마지막에 나온 감옥에 갇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 가장 학식이 많고 신분이 가장 높고 존귀한 사람이었던 바울도 우리 주님을 따라 자기를 낮추어 가장 낮은 자리에 섰고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영접하라고 하신 "가장 작은 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궁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헌금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다른 생업에 종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또 교회를 떠나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헌금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성도들의 헌금으로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예산은 경상비를 제외한 대부분은 이 두가지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