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40-44 주님 재림의 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임하여 갑자기 버림을 당할 것이니 항상 깨어 있으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이전 말씀은 노아의 때에 홍수가 와서 모든 것을 다 휩쓸어 갈 때까지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한 것처럼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도 역시 사람들은 그렇게 깨닫지 못할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버림을 받을 것이니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이어진다.
40절은 "그 때에"라는 말로 39절과 연결이 된다.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은 인자의 재림에 날에 라는 뜻이다. 인자의 재림의 날에는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사람은 버림을 받는다고 했다.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미래형으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원어는 밭에 있다는 말은 미래형이지만 데려감을 당한다는 말은 현재형이다. 현재형 동사를 쓴 것은 이 표현을 매우 생생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저것 좀 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지고 있어!" 라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마치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현재형으로 쓴 것이다.
41절은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을 때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다. 역시 40절처럼 현재형으로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다. 밭에서 일하는 것은 남자이기에 40절은 두 남자가 밭에서 함께 일할 때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뜻이다. 맷돌을 가는 일은 여자들의 일이기에 40절과 짝을 이루는 41절은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이다.
두 여자는 장성한 딸과 그 어머니일 것이지도 모른다. 당시 맷돌을 가는 것은 가족들 중에 여자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일하는 장면을 짝으로 말한 것은 가족 중에 남녀 상관없이 모두가 그렇게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40절에서 두 사람도 역시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이 함께 밭을 가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고대에 작은 토지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하는 일은 모두 똑같아도 같은 가족 중에도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과 버림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42절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라고 말한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성 위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군인이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사방을 둘러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너희는 어떤 날에 주가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주께서 언제 오신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오실 때에 맞춰서 준비하고 깨어 있으면 된다. 그러나 36절에서도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3절은 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지 설명한 것이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만약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지 집 주인이 알고 있다면 깨어 있어서 그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집 주인은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에 항상 깨어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44절은 이 부분의 결론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너희도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지도 못한 때에 인자가 온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단어는 "깨어 있으라"라는 말이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말씀도 종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떠난 주인의 비유로 예를 든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항상 성실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제자를 삼는 삶을 산다면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주님께 칭찬을 받는 종이 될 것이다. 주님 재림의 날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항상 깨어 주님 맞을 준비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