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20-22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도망하는 때가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시며 전무후무한 큰 환난이 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위해 그 환난의 날을 줄여주신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큰 환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니 신속하게 피하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큰 환난이 닥칠 것이지만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그 날을 줄여주신다는 말씀이다.
20절은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다. 겨울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겨울은 비가 집중적으로 오는 계절이기에 홍수가 나서 와디에 물이 넘쳐 흐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갈 길이 와디의 물로 인해 막혀버린다. 또 예루살렘의 겨울 밤은 지독하게 춥기 때문이다. 또 산으로 도망하라 했는데 겨울에는 산에도 숨을 곳도 없는데다가 노숙을 해야 하는데 얼어죽기 쉽다. 겨울철에는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도 어렵다.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지만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먼저 안식일에는 성문도 닫고 상점들도 닫고 비공식적으로 사고 파는 것도 모두일시적으로 중지되기 때문에 식량을 구할 수 없을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은 주석가들도 안식일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 13:18절에는 안식일이라는 말은 빠져있다는 것을 보면 마가의 공동체와 마태의 공동체가 안식일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가의 공동체는 이방인들이었기에 안식일에 대해 자유로웠지만 마태의 공동체는 유대인들이었기에 안식일을 범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안식일에는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제한이 되어 있기 때문에 멀리 도망갈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에 따르면 로마 장군 폼페이가 공격해올 때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공격에 맞서 싸우려 했다고 기록했다. 또 요셉푸스는 1세기 유대 전쟁 때 기샬라의 요한은 안식일에 수천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도망했다고 기록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특별한 상황은 예외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상시에도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 도망가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루 안에 요단강 건너편 산으로 도망할 수 있기 때문에 비상식량을 구할 수 없어 안식일에 도망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망만 간다고 끝이 아니다. 만약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는다면 오랜 기간동안 피난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있다가 안식일에 도망가야 한다면 성문도 닫혀서 도망할 수 없고 비상식량을 구할 수 없어 장기간 피난 생활을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21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15-20절에서 그렇게 급히 도망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이는 전무후무한 환난이라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의 기록에 남아있는 AD 70년 6개월동안 예루살렘이 포위되었다가 멸망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사건은 장차 마지막 때 있을 종말론적 심판을 미리 보여준 모형으로 볼 수 있다.
22절은 그 날들을 짧게 줄여주시지 않았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짧게 줄여주실 것이라 했다. 택하신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란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들을 줄여주신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환난을 끝까지 참고 견디라는 것이다. 그 날들은 믿는 자들이 견딜만큼 주신다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기간이고 멸망의 기간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기간이고 영생을 얻게 되는 기간이다.
예수께서 오늘 말씀에서 말씀하신 큰 환난은 일차적으로는 AD 70년 유대-로마 전쟁 때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인 사건은 마지막 때의 종말론적 심판의 모형으로 제시된 것이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명령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도망했던 것은 결국 자신들이 속해있던 유대교 공동체에서 탈출하여 분리된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깨닫고 점점 타락해가고 율법화되어가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탈출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그 믿음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믿음을 지켜 나간다면 세속화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겠지만 끝까지 견디며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