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37-39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한 예루살렘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아 주시며 그 날개 아래 품으려 하셨는데도 끝까지 거부한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책망하시며 예루살렘이 완전히 망할 것이고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다시는 주를 보지 못할 것이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처럼 예언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율법학자들을 보내실 것인데 이 세대 역시 조상들처럼 그들을 핍박할 것이고 그 모든 책임은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이러한 유대교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이라 부르며 한탄하시는 내용이 이어진다.
37절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간절히 울부짖는 소리로 시작한다. 이는 어미가 죽은 자식을 놓고 통곡하는 소리로 읽어야 한다. 이는 초기 유대교의 장례식에서 곡하는 여인들이 애가를 부르며 곡을 하는 장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유대교에서는 곡하는 여인들이 장례식에서 가족을 대신해서 곡을 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살던 곳이기에 특별히 유대교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의인화한 것이다.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던 자녀인 예루살렘이 죽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죽었다기 보다는 확정된 죽음을 예견하고 통곡하시는 장면이다.
통곡하시는 이유는 먼저 예언자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는 31절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또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쳤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돌로 쳐 죽였다는 것이다. 35절에서 사가랴를 돌로 쳐 죽인 일을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형 분사이기에 지난 과거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는 뜻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어서 "내가 네 자녀들을 얼마나 여러 번 모으려 했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으려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간절히 부르시는 모습을 암탉이 그 새끼들을 날개 아래 모으려는 장면으로 비유하셨다. 독수리나 다른 맹수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로 모이라고 부르는 장면이다.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병아리들은 어미 닭이 불러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뿔뿔이 흩어져 다니고 있는 그림이다.
호세아 11:1-6절에서도 하나님을 그 자녀들을 돌아오라고 간절히 부르는 어미의 모습으로 비유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일 때 이집트에서 불러내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는 것이다. 걸음마를 가르치고 품에 안아서 기르시고 죽을 고비에서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업고 다니고 젖을 물려서 키우셨는데도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나갔기에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 했다.
38절은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 집이 사막과 같이 황폐하게 되어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너희 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성전을 뜻하는 것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럴 땐 문맥을 봐야 한다. 24:1-2절에서 예수께서는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기에 예루살렘 보다는 성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성전을 "나의 집" 이라고 부르지 않고 "너희 집"이라고 부르신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성전을 차지하고 하나님 대신 주인 노릇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9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인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시기에 38절에서 말한 성전 파괴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언제부터 보지 못하나? "지금부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라고 말할 때까지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너희"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뜻한다. 39절은 예수께서 무리들 앞에서 가르치시는 마지막 말씀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나머지 부분들은 제자들에게만 사적으로 말씀하신 내용들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죽인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는 한결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암탉이 그 병아리들을 불러 모으듯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간절히 부르며 그 날개 아래로 피하여 대적들에게 멸망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창세 때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아 주시면서 계속해서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라고 마지막으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초점은 그들이 멸망한다는 예언에 있지 않고 회개하라는 것에 있다. 이제 마지막 경고이니 듣지 않으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다시는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언은 닫힌 미래 즉 정해진 미래를 알려주는 정보가 아니다. 예언은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용서해 주시고 그 품에 안아주시겠다는 것이 예언이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과 함께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회개의 기회는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말로만 믿는 척하면서 교회에서 주인 노릇 한다면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종의 자리에서 섬기면서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간다면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을 맞으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