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1-7 예수께서는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르치는 율법은 듣고 배우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은 사람들에게는 율법의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거룩하게 보이는 경문과 옷술만 크게 해서 지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인지 물으시고는 시편 110:1절을 인용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불렀다며 자신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그리스도라는 것을 나타내셨다. 이렇게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예수께서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어진다.
1절은 "그 때에" 라는 말로 앞부분과 이어간다. 유대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신 뒤에 이어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무리들이라는 말이 앞에 나오고 제자들이 뒤에 나오기에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있고 제자들은 그 뒤에 있는 모습이다. 무리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뒤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초점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기존의 제자들에게 이미 여러 차례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절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다.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말은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이 말 자체가 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으로 인도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이다.
3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2절과 연결이 된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은 행하고 지키라는 것이다. 행하라는 말은 하라는 명령을 행하라는 것이고 지키라는 말은 하지말라는 명령들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따라서 행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저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4절은 왜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아야 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신 것이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서 사람들의 어깨에 지워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워주는 무거운 짐은 행하고 지켜야할 모세의 율법들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자신들의 손가락으로도 그것들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어깨와 그들의 손가락이 대조가 된다. 어깨에 지는 것과 조금 밀어 움직이는 것이 대조가 된다. 그들은 말로만 가르쳐 사람들에게 행하고 지키라고 시키기는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이다.
5절은 이들은 자신들이 가르쳐 놓고는 아무것도 안하는 대신에 이들이 하는 일을 설명하신 것이다. 그들의 모든 행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보여준다는 말은 연극이나 공연을 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연극배우들처럼 관객이 많이 모이면 그 때만 공연을 한다는 뜻이다. 그 공연의 예를 든 것이 그들이 차는 경문 곽을 넓게 하고 옷술을 크게 만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경문 곽이란 성경 구절을 적은 조각을 넣어 이마와 팔뚝에 차고 다니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묶어주고 지고 가라고 한 대신에 자신들은 무거운 경문 곽과 긴 옷술을 지고 간다는 것이다.
6절은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잔치의 상석이란 잔치를 베푼 주인이 가장 귀한 손님을 모시는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회당의 상좌란 모두가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앉는다는 뜻이다. 오늘날 교회로 비유하면 강단 위에 있는 의자에 앉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회당의 높은 자리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잘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앉는다는 것은 가르치는 자들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감독관 행세를 하려는 것이다.
7절은 이들이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6-7절은 둘씩 짝을 이루고 있다. 6절에 나오는 잔치와 회당이 특별한 날 특별한 장소에서 높임을 받으려는 것을 나타낸다면 7절에 나오는 시장과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높임을 받으려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이 실제로 무거운 짐은 하나도 안지면서 경문과 옷술만 무겁게 해서 지고 다니는 목적은 이렇게 특별한 날 특별한 장소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항상 높임을 받으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공동체는 그렇게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지기 힘든 무거운 짐 같은 율법을 지워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거룩한 옷차림을 하고 존경받는 자리에 서기를 좋아하면서 실제로 율법을 따라 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모두가 동등한 형제자매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목회자가 높은 자리에 서서 군림하는 자가 되면 안된다. 예수님만이 선생님이시고 나머지는 모두 다 형제자매들일 뿐이다. 교회 안에서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와 같은 직분을 따라 계급화되면 안된다. 어떤 직분이든 다 일하라고 준 것이지 높임을 받으라고 준 것이 아닌 것이다. 바울도 고린도전서12:12-31절에서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고 나머지는 모두 동등한 지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선생님이시고 나머지는 모두 함께 섬기는 형제자매들인 것이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행위를 본보기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문제는 가르치는 자가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행하지도 않으면서 거룩한 척 연극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가 그대로 다 행하지 못하는 것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그대로 드러내면 된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전하는 자가 그 말씀이 자신의 권위인 것처럼 하면서 자신을 거룩하게 포장을 하고 연극을 한다면 그러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하나님을 대신한 우상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자들에게 속아 그런 자들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열광을 하며 따르게 된다. 사이비 종교나 이단 종파들의 교주들이 정확히 그런 모습이다. 목회자만이 아니라 성도들도 자신을 거룩하게 포장하기 시작하면 누구나 그렇게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 노릇을 하는 연극배우가 된다.
따라서 행하는 것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이고 가르치는 사람들을 따라 행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본보기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로 동등한 존재들이기에 서로 권면하고 서로의 짐을 대신 져 주면서 함께 앞서가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