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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22:34-40

Dawn Word

마태복음 22:34-40

가장 큰 계명

2022. 1. 5.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22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22:34-40 바리새파 우두머리들은 함께 모여 회의를 한 뒤에 예수를 시험하려고 어떤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날마다 암송하던 하나님 사랑을 첫째 계명으로 말씀하시고 이어서 이웃 사랑을 둘째 계명으로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파 사람들은 일곱 형제가 한 여인과 결혼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예수님께 부활을 반박했지만 예수께서는 이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바보들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소식을 듣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하는 내용이다.

34절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한 자리에 모였다고 했다. 개역에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는 말은 본래 소나 말의 입을 묶어 그 입을 막는 것을 뜻한다.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새번역처럼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개역은 완전한 의역을 했고 새번역은 원어에 담긴 그림을 남겨 두었다. 성경을 번역할 때 새번역처럼 원어에 담긴 그림도 살려두면서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번역한다면 그것이 최선의 번역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였다는 말은 시편 2:2절에도 나온다. 시편 2:2절의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라는 말이 통치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뜻으로 이 구절과 똑 같은 말이다. 관원이라는 말은 왕의 신하들 중에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파 사람들도 역시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 가장 높은 우두머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뜻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는 기뻐했지만 선생인 예수의 또 다른 승리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대적이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기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라는 사람이 스승으로 계속해서 승리하여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스승이었던 자신들의 견고한 위치가 흔들리게 되어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수뇌부가 한자리에 함께 모인 것은 바로 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라는 스승의 인기를 꺾어 놓아야만 했다.

35절은 그들 가운데 한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고 했다. "율법교사"라는 말은 마태복음에서는 딱 한 번만 나온 말이다. 그 의미는 "법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자주 나오는 "서기관" 또는 "율법학자"로 번역된 말의 본래 의미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결국 둘 다 똑같이 성경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던 율법학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은 그 의미는 똑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 직업에 대한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읽는 것을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스라엘 밖에서 글을 쓰는 필사자라는 직업은 인쇄술이 없던 시절 책을 베껴쓰는 직업을 뜻하는 말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이 기록되어 전해지던 시절 이 사람이 율법을 다루는 전문가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 이 단어를 썼을 것이다. 새번역에서는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없다고 표시를 해 놓았지만 후대의 소문자 사본인 118번 과 같은 몇 개의 사본들에만 생략되었을 뿐이고 4세기 대문자 사본인 Codex Sinaiticus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대문사 사본들과 소문자 사본들은 이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더구나 누가복음 10:25절에서도 같은 단어를 같은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에 후대의 필사자가 첨가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단순한 성경 필사자들이 아닌 율법의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려고 물었다고 했는데 시험하려고 물었다는 말은 예수의 말에서 잘못된 점을 잡아 공격하려고 물었다는 뜻이다. 율법에 대한 지식에서는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하듯 물은 것이다. 잘못 대답하면 한 마디 가르쳐주며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려 한 것이다.

36절에서 그 율법교사는 예수를 "선생님!" 이라고 부르면서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 라고 물었다.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에 대해서는 당시 유대교 랍비들 가운데서도 항상 토론의 주제가 되었던 것이다. 시편과 예언서들에는 요약된 율법들이 나오지만 하나로 일치하지는 않는다(시 15편; 이사야 33:15-16; 미 6:8; 암 5:4; 합 2:4).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틀린 답이라 말하며 예수를 깎아내리려고 한 것이다.

37-38절에서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대답하셨다. 이는 유대인들이 날마다 두번씩 암송하는 쉐마라고 불리던 구절이다. 세 번씩이나 반복된 "다하고"라는 말은 "전체" 또는 "모두"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분산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100개 중 단 한 개만 다른 것을 사랑해도 그것은 전체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온전히 하나님만 사랑하고 다른 것은 전혀 안중에 두지도 말라는 뜻이다. 이는 결국 십계명 중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한 구절로 요약한 것이다.

39절에서는 둘째가는 계명을 말씀하셨다. "둘째도 이와 같다"라고 하셨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똑같이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십계명 중 인간들에 대한 계명들을 한구절로 요약한 것이다. 이 둘이 같다고 했기에 이 두 계명은 결국 하나이다.

요한일서 4:20절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40절에서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서들이 달려있다"라고 하신 것이다. 새번역에서 "달려있다"는 말은 개역에는 없다. 원어는 매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 두 계명에 모든 모세 오경과 모든 예언서들 즉 전체 성경이 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배를 잘 드리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원수 같은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한다면 그것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배란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드려지는 것이지 주일예배나 수요예배 같은 예배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성경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인데 이 두가지는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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