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23-33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파 사람들은 일곱 형제가 한 여인과 결혼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예수님께 부활을 반박했지만 예수께서는 이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바보들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헤롯당을 대동하고 와서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야 하는지 물었지만 예수께서는 로마 황제에게 바쳐야 할 것은 로마 황제에게 바치고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예수를 시험하는 내용이다.
23절은 원어에서 새번역처럼 "같은 날"이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된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예수를 공격하러 온 바리새파 사람들은 실패하고 물러났다는 소문을 듣고 바로 그날에 예수께 왔다는 뜻이다. 이들은 예수께서 할 말이 없게 만들어 자신들을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높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예수께 다가왔다. 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인데 예수께 질문을 했다고 했다. 사두개파란 이름은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에서 온 말이다. 그들은 대대로 대제사장을 맡았던 가문으로서 모든 예언서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모세오경만이 영감을 받은 책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다니엘 12:2-3절에 나온 부활에 관해서도 인정하지를 않았다. 반대로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언서들도 영감을 받은 책으로 보고 부활도 믿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질적인 지도자들로 자리를 잡았기에 이들은 늘 바리새파 사람들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번 기회를 바리새파 사람들을 누르는 기회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24절에서 이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신명기 25:5절을 근거로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형제가 죽은 사람의 아내에게 장가를 들어 그 형제의 씨를 세워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는 창세기 38:8절에 나오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경우에서도 나온다. 이는 물려받은 땅이 다른 지파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고 동시에 과부에게도 살 길을 마련해 주기 위한 제도였다.
25-28절에서 사두개파 사람들은 "우리 옆에 일곱 형제가 있었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형제들 중 맏아들이 장가를 들었는데 자식이 없이 죽었기에 그 아내를 다른 형제에게 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여섯 형제가 모두 다 형수와 결혼한 뒤 자식도 낳지 못하도 죽었고 마지막으로는 그 여자도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 계대혼이라는 제도를 근거로 극단적인 경우의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다.
29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오해했다는 것이다. 오해했다 또는 잘못 생각했다고 번역된 말은 마태복음 18:12절에서 양이 길을 잃었다고 할 때 쓴 말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미혹된다"는 말로 쓰인 말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엉뚱한 길 빠져 완전히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대제사장 가문으로 백성들을 인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30절은 "왜냐하면" 말로 왜 사두개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하신 것인지 그 이유를 밝히신다. 부활의 때에는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천사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영원한 존재로 변화될 것인데도 부족한 인간의 머리로 죽은 시체들이 소생하여 다시 죽을 인생을 사는 것처럼 생각하여 엉뚱한 샛길로 빠졌다는 것이다.
31절은 또 사두개파 사람들이 성경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설명하신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서 너희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도 못했느냐고 물으셨다. 대제사장 가문인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성경도 안 읽어보았느냐고 조롱하듯 반문하신 것이다.
32절은 사두개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 인정한 모세오경 중에 출애굽기3:6절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뒤 오래된 뒤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는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현재 존재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다"라는 의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죽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있다는 뜻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8:11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는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있고 장차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모세에게도 말씀하셨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도 믿지 못한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33절에서는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다고 했다. 이 무리들은 예수님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이다. 놀랐다는 말은 얻어맞고 쫓겨났다는 뜻이다. 너무 놀라 그 정신이 얻어맞고 그 몸에서 쫓겨났다는 뜻이다. 기절초풍할 만큼 놀랐다는 뜻이다. 같은 말이 7:28절에서도 나온다. 예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시고 내려올 때도 무리들은 그 가르침에 기절초풍할 만큼 놀랐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만큼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정하는 모세오경에서 부활이 분명하게 나와있지 않다며 부활을 부정했다. 자신들의 부족한 이해력의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역시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에 근거해서 부활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역시 자신들의 부족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부활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오늘날 그런 사람들에게도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바보들이라 부르실 것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흙으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은 사실 하나님의 존재나 능력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죽어서 완전히 썩어 없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육체를 가진 존재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 믿는 자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육체로 부활하게 하실 것이다. 그것을 의심한다면 우리도 역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사두개인들과 똑같은 사람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