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15-22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헤롯당을 대동하고 와서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야 하는지 물었지만 예수께서는 로마 황제에게 바쳐야 할 것은 로마 황제에게 바치고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왕이신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한 자들은 모두 진멸될 것이고 왕의 예복을 입기를 거절한 자들도 내어쫓길 것이며 오직 요한이 선포한 회개의 침례라는 예복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만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 하셨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이러한 비유를 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를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 죽이려고 납세에 대한 덫을 놓는 장면이 이어진다.
15절은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한다. 혼인잔치의 비유로 유대교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반역자라고 말씀하셨을 때를 말한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하신 것이 덫에 걸리게 하여 죽일까 의논을 한 것이다. 이들은 19:3절에서도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이혼에 관한 질문을 했었다. 이번에도 어느 쪽으로 답을 해도 걸리는 질문을 하려고 의논한 것이다.
그렇게 의논한 바리새파 사람들은 16절에서 자기네 제자들을 헤롯당원들과 함께 보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제자들이라는 말은 바리새파의 우두머리 지도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쓴 말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그 지도부가 모여 의논을 한 뒤 아랫사람들을 파견했다는 뜻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헤롯당과는 내면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헤롯당은 로마제국에 협력하여 그 권력을 인정 받고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바리새파와 열심당은 로마로부터 독립하여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려던 사람들이다.다만 열심당은 무력으로 로마를 몰아내겠다는 사람들이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하나님 나라를 되찾으려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헤롯당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적대시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헤롯당을 데리고 함께 온 것은 예수님을 로마에 대해 반역하여 독립투쟁을 벌이는 열심당의 무리로 몰아 죽이려는 것이다. 이들은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쓰고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참되시며 하나님의 길을 참됨 안에서 가르치는 줄 안다고 했다. 새번역에서 "진실한 분"이라고 번역한 말과 "참되게"라고 번역한 말은 둘 다 같은 말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거짓된 칭찬으로 속이려는 것이다.
이어서 개역에서는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라는 말과 새번역에서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이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대로 가르치시고 또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거짓된 가르침을 하신다는 칭찬이다. 또 이어서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라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이는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말도 솔직하게 까놓고 해 달라는 뜻이고 예수를 죽이기 위한 함정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대부분 로마제국에 반대를 하면서도 반역자로 몰릴까 두려워서 말로 표현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17절에서 그들의 질문은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 당신의 의견을 말해달라는 것이다. 세금이라는 말은 로마제국이 유대인들에게 해마다 바치도록 했던 인두세이다. 이 세금은 유대인들에게 큰 고통이었고 유대인들은 누구나 메시야가 와서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해서 이 세금을 내지 않고 살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 사람들 신경 안쓰는 분이라며 사악한 의도로 칭찬을 한 것이다.
18절은 "그러나 예수께서는 저들의 악함을 아시고" 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거짓된 칭찬과 함정을 다 간파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라고 하시며 "외식하는 자들아" 라고 하셨다. 원어의 본래 뜻은 "이 연극배우들아!"라는 뜻이다. 예수님 앞에서 거짓된 칭찬을 하며 연극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절에서 예수께서는 세금을 낼 동전을 보여달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데나리온 이라고 불리던 로마 동전 하나를 가져왔다. 20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이 형상과 새겨진 글이 누구 것이냐?"라고 물으셨다. 당시 동전에는 로마황제의 얼굴과 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21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로마황제의 것이라고 바로 대답했다. 아마도 이들은 예수께서 함정에 걸렸다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서 로마제국에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반란군 지도자가 되는 것이기에 헤롯당에게 딱 걸리게 된다. 반대로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닌 이방인들의 종이 되는 것이기에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함정에 걸린 것은 오히려 저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셨다. 황제의 얼굴과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처럼 취급되어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동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순히 로마제국에 내는 세금은 로마 제국에 내고 성전에 낼 세금은 동전을 바꿔서 하나님께 바치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본래 황제의 형상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자들이기에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에 대해서도 해야할 일을 다 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헤롯당도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드시고 바리새파 사람들도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드신 것이다.
22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기이히 여겼다"고 했다. 새번역은 "탄복을 하였다"라고 했다. 이 말은 마태복음 8:27절에서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경악할 만큼 놀랐고 할 때 썼다. 9:33절에서는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는 것을 보고 경악할 만큼 놀랐다고 할 때 쓴 말이다.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놀랄 때 쓴 말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혜로운 대답으로 고소할 거리를 찾지 못한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냥 떠나갔다.
예수님은 세상 나라만 섬기던 열심당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만 섬긴다고 했던 바리새파 사람도 아니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는 세상의 권위에도 복종하라고 가르치셨다. 바울도 로마서 13:1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국가 권위에도 복종하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도 두개의 나라를 섬기는 자들이다. 세상의 나라를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도 섬기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의 법과 질서를 지키고 순종하면서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