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33-41 예수께서는 하나님 노릇을 하며 예수님을 대적하는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악한 소작인 농부들의 비유로 말씀하시며 스스로 자신들의 입으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로는 아버지께 거역했더라도 나중에 뉘우치고 순종한 아들과 말로는 순종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불순종한 아들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하고 순종한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소작인들이 포도원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비유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죄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33절에서 예수께서는 "또 다른 비유 하나를 들어보아라" 라고 말씀하시며 시작하신다. 이전 비유와 마찬가지로 포도원에 관한 비유이다. 집주인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포도원을 일구었다. 원어는 대부분의 영어 번역처럼 "포도원을 심었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담을 둘러 세우고 포도즙 짜는 틀을 팠다. 그리고 감시할 수 있는 망대도 건축했다. 그 다음에는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고 먼 나라로 떠난 것이다.
포도원을 만드는 이러한 과정은 이사야 5:2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사야 5: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고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포도원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사야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을 포도원 소작인 농부들로 비유하며 고소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스라엘을 맡기시고 떠나셨다는 것이다.
34절은 열매를 거둘 때가 가까웠을 때 포도원 주인은 그의 종들을 소작인 농부들에게 보냈다. 보낸 이유는 "그의 열매들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의 열매들"이란 모든 포도나무 열매들이 아니다. "그의 열매들"이라는 말은 포도원 주인은 수확한 모든 포도를 다 가져가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의 열매들"이란 소작인 농부들의 몫을 제외하고 난 주인의 몫에 해당하는 열매들이다. 큰 돈과 시간을 들여 포도원을 만든 것은 주인이었기에 그 열매들 중 일정한 부분은 주인에게 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35절을 보면 이 소작인 농부들은 주인의 종들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다고 했다. 때리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은 죽이는 것이고 죽이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은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다. 예레미야 20:1-2절에 보면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예레미야를 때렸다. 예레미야 26:21-23절을 보면 여호야김 왕이 예언자 우리야를 죽였다. 역대하 24:21절을 보면 예언자 스가랴를 왕의 명에 따라 돌로 쳐 죽였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이다. 예언자들이 한 일은 회개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라는 것 뿐이었는데도 이렇게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쳐 죽였다.
36절은 하나님께서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 보다 더 많이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많은 종들에게도 똑같이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쳐서 죽였다는 것이다. 더 많은 종들을 보내셨다는 말은 한꺼번에 많은 종들을 보내셨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예언자들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보내셨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역하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오랫동안 참으시며 계속 회개하고 하나님 뜻에 따르기를 기다리셨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다"는 말은 그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계속해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쳐서 죽였다는 것이다.
37절은 그 후에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말하길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장차 그 포도원을 상속할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악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오래 참으신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참으셔서 그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종들인 예언자들은 그렇게 했지만 아들에게 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38절에서 그 소작인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기를 "이는 상속자이다. 오라! 우리 함께 그를 죽이고 그 유산을 차지하자!"라고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소작인들이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 대부분의 지주들은 로마제국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로마에 가서 정치에 참여하고 있지만 가끔은 돌아와서 보고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 나타난 종들은 그 주인이 오랫동안 인내하며 계속해서 종을 보내는 그 사랑의 인내를 오해한 것이다. 그들은 주인이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 아들만 죽이면 그 포도원은 자기들 것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39절은 그래서 그 아들을 잡아 포도원 밖으로 내 던지고 거기서 죽였다는 것이다.
포도원의 소작인들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오해한 것이다. 만약 포도원 주인이 살아있다면 처음 종을 때려서 보냈을 때 즉시 군대를 보내 심판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계속해서 종만 보내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주인은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하나님 노릇을 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을 때 그를 죽인 것이다. 하나님의 인내와 한결 같은 사랑을 하나님이 죽었기에 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렇게 비유를 모두 말씀하신 뒤 40절에서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질문하셨다. 이 때까지 이 비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41절에서 대답하기를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제 때에 열매들을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소작을 줄 것이다"라고 했다. 예수께서 의도한 대로 저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자기들을 스스로 정죄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도 이 비유와 다르지 않다.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권세를 부리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되면 자신들도 모르게 나중에는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 교회 안의 모든 다툼들은 다 이렇게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반대 없이 모두에게 인정을 받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다가 욕을 먹고 고난을 당하면 그것이 복이다. 만약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 박수 갈채를 받고 존경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늘 비유에 나온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소작인 농부들과 같이 되는 지름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태복음 20:26-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라고 하신 것이다. 또 마태복음 16:24절에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기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하신 것이다. 안그러면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이 받을 열매들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이다.